영국 최초 식민지 제임스타운과 미국 독립전쟁의 최후의 결전지 요크타운보다 사실상 관광지로 유명한 곳은 사이에 위치한 윌리암스버그이다. 지역을 합쳐 역사적 삼각지대 (Historic triangle) 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국인들의 세력이 커가고 인디언들이 후퇴하면서 영국 정착민들은 제임스타운에서 조금 내륙 쪽으로 들어간 윌리엄스버그로 본거지를 옮긴다. 제임스타운의 이름은 당시 영국왕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정착민들이 윌리엄스버그로 옮길 당시 영국 왕의 이름을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 18 세기 미국을 재현한 민속촌” Colonial Williamsburg 있다. (Jamestown 작은 규모의 민속촌 17세기를 정착민과 인디언 마을을 재현한 곳이다.) 한국에서는 식민지라는 말이 부정적이고 치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미국에서 그렇지 않다. 자기들이 점령자였고 모국과 싸워 독립에 성공했으니  피해의식이 없어서 그런 모양이다월리엄스버그는 이런 역사적 자원을 바탕으로 관광 산업이 수입원이다.  한때 버지니아 식민지의 수도였지만 독립전쟁 영국군의 공격에 대비해 내륙 (Richmond) 으로 수도를 옮긴 뒤에 도시가 쇠퇴하고 개발이 안되었다. 그런데 오히려 덕분에 옛날 건물들이 남아 있어서 건물들을 바탕으로 민속촌” Colonial Williamsburg 만들고 이젠 버지니아 최대 관광지가 되었다. 물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놀이 공원 (Busch Gardens) 있다. 부시가든은 미국서 제일 많이 팔리는 버드와이저 맥주를 만드는 세계 최대의 맥주회사인 Anheuser-Busch 만든 놀이 공원이다. 놀이 공원 화장실 벽에는 우유보다 맥주가 훨씬 건강에 좋다고 주장하는 문구가 쓰여진 것을 본 적이 있다.

 

Colonial Williamsburg 나는 인연이 없는 모양이다. 오래 여름에 왔을 때는 숨쉬기도 어려울 정도로 너무 더워서 대충 보다 나왔는데 이번에는 춥고 비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포기하고 요크타운 (Yorktown) 으로 차를 몰았다. 요크 타운에는 조그만 박물관과 격전지를 드라이브 하는 코스가 있다. 사실 특별히 것은 없지만 비바람이 몰아쳐도 차안에서 앉아 돌아 있으니 고마웠다. 당시 영국군은 뉴욕과 버지니아 양쪽에 나뉘어 주둔하고 있었고 뉴욕에 주둔하고 있었던 워싱턴은 맨하튼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군의 본진을 공격하고 싶어 했었다. 그런데 남쪽 (서인도 제도) 있는 프랑스 함대가 버지니아 공격을 도울 있다고 하니 군대를 이끌고 뉴욕서 버지니아로 행군한다. 미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행군한 길이 내가 길과 비슷하다. 워싱턴이 주둔하고 있던 Dobbs Ferry 영국군이 주둔하고 있던 맨하튼에서 북쪽으로 30 거리이고 내가 사는 동네의 동네이다. 그곳을 출발해 프린스턴 필라델피아 볼티모어 등을 거쳐 내려 왔다. 따지고 보면 워싱턴이나 나나 따라 최단거리로 내려 왔을 테니 같은 길을 따라 내려온 것이 신기할 것도 없다. 워싱턴도 내려오다 자기 집을 들렸다 왔고 나도 같은 집을 구경하고 내려왔다 ( 신기해 보이려고 그런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 함대는 요크타운 바다에서 영국 함대를 물리쳐 퇴로와 보급로를 막고 미국 프랑스 연합군은 요크타운에 주둔해 있던 영국군을 공격해 항복을 받아낸다. 버지니아에서 대패한 영국은 미국을 포기하고 미국 독립전쟁은 끝이 난다. 프랑스 군은 병력만 지원한 것이 아니라 독립군의 월급까지 빌려 주었다고 한다. 남쪽으로 행군하던 독립군이 중간 (메릴랜드 ) 오다가 월급 주면 간다고 버텨서 프랑스 사령관이 워싱턴에게 돈을 꿔주었다는 것이다. 프랑스 장군은 빌려준 돈을 받았을까? 미국 독립 전쟁을 돕느라 돈을 너무 많이 쓴 프랑스 왕은 세금을 더 걷어 구멍난 재정을 메꾸려다 프랑스 대혁명을 만나 단두대로 향하게 된다.

 

영국군과 항복 조건을 상의했다는 요크 타운 농가. 


그 집 내부. 항복 문서를 사인했다는 방




여행

뉴욕으로 돌아올 건너 Chesapeake Bay Bridge-Tunnel 나름 관광자원이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 True Lies 등에도 등장했던 다리인데 30 넘게 파도를 내려다 보면서 바다위를 달리는 기분이 묘하다.


미국 역사 기행 버지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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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기행   버지니아 (Virginia) - 2


워싱턴의 독립군과 프랑스 연합군이 영국군과의 최후의 일전에서 승리를 거두어 미국 독립 전쟁이 끝난 곳이 버지니아의 요크타운 (Yorktown) 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미국 최초 영국인 정착지인 제임스타운 (Jamestown) 바로 동네이다. 그곳을 향해 조지 워싱턴의 농장을 출발해 95 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달렸다. 95 고속도로는 미국 동쪽 대서양 연안을 따라 북쪽 (Maine ) 부터 남쪽 (Florida) 까지 종단하는 고속도로이다.  뉴욕 , 필라델피아, 보스톤, 워싱턴 DC 동부 최대 도시들을 가로 지르는 도로로서 미국서 가장 차가 많이 다니는 고속도로라고 한다 ( 교통부 Vehicle miles traveled 기준).  미국서 자동차 여행할 때 아쉬운 것은 햄버거와 핫도그 밖에 없는 고속도로 휴게소이다. 어둑어둑해 도착해서 hotels.com 에서 Guest Rating 기준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 시즌이 아니어서 가격이 좋았다.

 

늦게 일어나 아침 먹고 역사적인 제임스타운부터 찾았다. 제임스타운 관광지는 군데로 나뉘어져 있어 헷갈리게 되어있다. Jamestown Settlement 말하자면 민속촌으로 당시 건물들이나 사는 모습을 재현해 놓은 곳이고 Historic Jamestowne 이라는 곳은 실제 최초 정착지이다. 5 거리에 있는데 운영 주체가 달라 입장료를 각각 내야 한다. “진짜제임스타운부터 갔다. 최초 정착지를 제임스 강가의 늪지대 섬에 잡은 이유는 원주민 (인디언) 공격을 막기 위해서 였는데 그곳 지리를 아는 인디언들을 상대로 늪지대는 방어막으로서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습도가 높고 모기도 많고 식수를 구하기도 어려워 초기 정착민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인디언들이 땅을 비워 놓은 이유도 사람이 살기 어려운 땅이었기 때문이다.





제임스타운 최초 정착지. 왼쪽 울타리는 틈이 많아 인디언 화살이 쉽게 통과할 것 같아 보였다. 그래도 대충 만든 것이 아니라 원래 나무 기둥이 박혔던 자국을 따라 재건한 것이라고 한다. 앞에 보이는 제임스 강에서 하선 했을 것이다. 그 지역을 통치하던 포카혼타스의 아버지는 앞에 보이는 대포를 얻기 위해 애를 많이 썼다고 한다. 

 

 

아마추어 고고학자인 듯한 현지 가이드에 의하면 제임스 타운이 최초 영국인 정착지인데도 그보다 13년이나 늦은 매사추세츠 주의 보스턴 남쪽지역 (Plymoputh) 그늘에 가려진 것은 버지니아가 남북 전쟁 남부군의 일원으로서 패배한 주이고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지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또 다른 이유는 매사추세츠 정착민들은 종교의 자유를 위해 것인데 비해 버지니아 정착민들은 영국 투자자들이 벌기 (금을 얻기) 위해 보낸 것이라 미국의 시작으로 모양이 좋지않아서 였다. 사실 제임스타운은 미국의 시작으로 내세우기엔 좀 끔찍한 역사 (식인의 역사) 를 품고 있다. 인디언에 포위되어 굶기 시작한 영국인들은 말, 개, 고양이, 잡아 먹고 나중엔 가죽 구두도 삶아 먹다가 결국 서로 잡아먹기 시작했다. 임신한 부인을 살해해 소금에 절여 놓고 먹다가 들켜서 사형된 남편의 기록도 있고 후에 발견된 소녀의 유골에서도 살을 발라낸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유럽인들의 식민 역사상 식인의 증거가 발견된 곳은 제임스타운이 유일하다. 


금이 발견되지 않은 제임스타운이 경제성을 가지게 되고 따라서 유지 되었던 것은 담배 농사때문이었다. 인디언 공주 포카혼타스와 결혼한 영국인이 바로 제임스타운에 담배를 재배해 영국에 팔기 시작한 사람이다. 제임스타운 식민지 광고를 위해 ( 많은 이주자를 모집하기 위해) 영국에 보내진 포카혼타스는 공기 나쁜 런던에서 1년만에 병에 걸려 죽는다.


 

영국인 정착민들에게 납치당해 기독교로 개종하고 영국인과 결혼하여 

일시적이나마 평화의 시기를 열었던 포카혼타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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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기행   버지니아 (Virginia) - 1

 

뉴욕서 4-5 일정으로 자동차 여행을 만한 곳은 북쪽으로 캐나다 퀘벡 Quebec (도깨비란 라마 때문에 인기있는), 남쪽으론 버지니아 윌리엄스버그 Williamsburg 정도 까지 일 것이다.  서쪽으로는 펜실베니아 주가 있긴 한데 특별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장소가 떠오르지 않는다 (허쉬 Hershey파크나 아미쉬 Amish마을 정도).  동쪽은 물론 대서양이고 ( 아일랜드 끝에 몬탁 Montauk 있긴 하지만).  아직 추위가 남아있는 3월에 북쪽으로 없고 남쪽으로 차를 몰았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살던 집을 거쳐 포카혼타스 (Pocahontas) 동네이자 미국 최초 영국인 정착지라는 제임스 타운이 있는 버지니아의 윌리엄스버그가 목적지였다.

 

뉴욕서 조지 워싱턴이 살던 Mount Vernon 까지는 차로 시간 정도 걸리고 (242 mile, 390km) 그곳에서 제임스 타운까지는 3시간 정도 걸린다 (150 mile, 240km). 조지 워싱턴의 집은 그가 태어난 곳은 아니고 많은 (아주 많은) 미망인과 결혼한 후에 살던 집이다. 집에서 농장주로서 16년간 살다가 독립 전쟁에 나가 (1775) 전쟁을 치르고 대통령까지 지낸 22년만에 돌아와 (1797) 여생 (2) 보냈다. 날씨가 추운데도 토요일이라 그런지 집에 들어가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있었다. 농장이니까 당연히 대지는 넓었지만 자체는 아무래도 18세기에 지어진 집이라 기대보다 작았다. 농장 입구에 세워진 visitor center 에서 기념품을 사는 사람들 표정에 초대 대통령에 대한 경외감이나 자부심 같은 것이 느껴졌다.  



사진 설명: 워싱턴 집을 구경하기 위해 줄서  모습. 오른 건물이 본관이고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은 servant room 이라고 손님들을 모시고 하인들이 쓰던 건물이라고 한다. (Galaxy Note 8 으로 찍음)




Visitor center 구석에는 농장에서 일하던 흑인 노예의 생활을 보여주는 전시관도 있었다. 자유와 해방과 행복권의 추구를 내세우며 독립전쟁을 이끌었던 워싱턴의 농장에서는 300명이 넘는 노예가 있었다. 전시관에서 안내문을 열심히 읽고 있는 흑인 모녀가 눈에 들어왔다. 워싱턴은 노예들이 쉬는 시간이 없이 일하도록 독려했다고 한다. 경제학자들은 노예제도는 경제성이 낮아서 링컨의 노예 해방이 없었 어도 없어졌을 것이라고 한다. 노동 생산성이 낮아서 먹여 살리는 유지비용이 있다는 것이다. 수백명의 노예를 데리고 농사를 지어도 워싱턴은 빚을 많이 지고 있었다. 워싱턴뿐 아니라 버지니아 농장주 대부분이 영국 상인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었고 그런 점이 버지니아가 독립 전쟁에 참여하는 것에 일조했다고 한다.

 



사진 설명: 워싱턴이 살던 (Mount Vernon).  (Galaxy Note 8 으로 찍음)



당시 대영제국과 독립군과의 싸움은 지금으로 따지면 미국과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과 비슷했다. 그런 전쟁을 승리로 이끈 워싱턴은 물론 대단한 인물이다. 그러나 운도 매우 좋았다. 워싱턴의 독립군이 영국군과 정면으로 맞붙어 이긴 적이 거의 없었다. 이긴 경우는 게릴라 기습 공격에서 치고 빠지는 식이었다. 워낙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라 영국군은 인명 피해를 최소화 해서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 목적이었고 독립군은 도망 다니며 식민지 사람들의 독립에 대한 꿈을 유지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데 미국 땅덩어리가 워낙 커서 도망 다닐 곳이 많았다. 워싱턴의 공적은 춥고 배고픈 상황에서 독립군의 해체를 막고 유지한 것이었다. 반란의 괴수로 찍힌 워싱턴은 중간에 포기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미국 독립 전쟁의 승리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영국을 견제하려는 프랑스 참전이었다.


여행 팁:

볼티모어에 가격이 좋은 게식당이 많으므로 가는 길에 들려가면 좋다.

워싱턴 DC 바로 아래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에 가격에 비해 깨끗한 호텔이 많다.


 

(계속)

Posted by kr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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