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썼던 글들을 보충하고 새로 쓴 (쓸) 글들을 모아 "심리학자들" 이라는 주제로 연재를 시작합니다.


프로이트는 누구인가

 

프로이트는 최초의 심리학자도 아니고 심리학의 창시자도 아니다 (그는 정신분석학 Psychoanalysis 창시자 이다). 그래도 일반 사람들에게 프로이트는 아직까지 가장 유명한 심리학자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소시적에 프로이트가 무슨 공자나 소크라테스 되는 사람인 알았다. 프로이트에 대한 평가는 천재부터 심리 소설가 (그의 이론이 허구라는 의미로) 까지 극단적으로 갈린다. 생각에 그는 무의식이 인간의 마음과 행동의 아주 중요한 요인이라는 틀은 제대로 잡았는데 세부적으로 들어가서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틀렸다.지금도 외디푸스 콤플렉스 라든지 구강기 라든지 항문기 남근기 같은 개념에 바탕을 근거 없는 (황당하기까지 ) 성격 형성이론을 진지하게 받아 들이는 사람들이 많다.

 

과학적 심리학의 전통에서 보면 프로이트의 이론은 맞고 틀리고를 떠나 아예 기본적으로 과학적 이론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보는 것이 21 세기 심리학자들의 다수 의견이다. 과학적 이론이란 무엇보다도 실험적 또는 경험적 자료를 가지고 이론이 맞고 틀리고를 판단할 있어야 하는데 프로이트의 이론의 상당 부분은 모호하고 애매해서 그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뭔가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고 사람의 행동을 통제 예측할 있을 같은 느낌을 주는 경향이 있다. 이런 점은 라캉같은 현대 정신분석학자들에게도 적용되는 비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의 이론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문화 예술에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도 재미있는 심리 현상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 혈액형 성격이론이 인기있는 이유와 관련이 있다). 그렇다고 프로이트가 완전히 엉터리거나 사기꾼이라고 수는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무엇보다 심리학에서 무의식의 중요성을 상기시켜 공로가 있다. (그 무의식의 내용에 대해서는 프로이트의 생각과 현대 심리학의 의견이 좀 다르다)  100 학자를 21 세기 기준으로 비판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사람 마음이 복잡하듯이 프로이트에 대한 평가도 복잡하다. 프로이트는 누구인가? 우선의 그의 삶을 살펴본다.

 

London 근교에 있는 프로이트가 말년에 살았던 집


프로이트(1856 - 1939)

 

프로이트는 1856 년에 오스트리아 (현재 체코 지역) 에서 태어났다. 나이로 따지면 현대 과학적 심리학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분트 (Wundt) 조카뻘이고 (24 아래) 아인슈타인의 삼촌뻘 (23 ) 된다. 개화시대 정치가였고 서유견문을 쓰기도한 유길준과 동갑내기이다. 서유견문에 미국과 유럽 여행기가 들어있다는데 유길준이 프로이트가 활동했던 비엔나도 갔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찾았다. 프로이트는 그의 아버지가 번째 결혼해서 낳은 아들이다. 그래서 프로이트의 어머니는 아버지에 비해 아주 젊었다. 스무 차이라고 한다. 그래서 어린 프로이트는 늙은 아버지와 젊은 어머니가 어울리지 않고 차라리 전처의 아들 (프로이트의 이복 ) 어머니와 어울린다는 생각을 어릴 적이 있다고 한다.  프로이트는 어렸을 어머니의 나신을 것에 대한 충격을 성인이 되어서 특별히 기억하며 자기 자신의 심리를 분석했다고 한다. 이런 경험이 그가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개념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또래 남자들은 어렸을 어머니 잡고 여탕에 따라가서 어머니 아니라 동네 아줌마 아가씨 할머니 나신을 보고 사람들이 많을 터인데 프로이트가 알았다면 할말이 많았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프로이트의 집안은 넉넉하지 못했다. 아주 빈곤층은 아니었지만 가난한 중산층이라고 있다. 프로이트는 성인이 되어서도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의대를 졸업하고도 돈이 없어서 약혼녀와 결혼하지 못하고 오래 떨어져 살아야 했고 나중에 개업의 시절에도 항상 환자를 많이 받아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다고 한다. 의사/정신 분석가로서 자리를 잡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다가 전쟁 (1 대전) 때문에 고생했다. 전쟁 물자가 부족해서 고생하고 전후에는 패전국 오스트리아의 국민으로서 식량과 땔감이 부족해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렸다. 그래서 외국에 사는 친지들이 보내주는 음식에 의존하기도 했다. 패전국 오스트리아는 영토의 상당 부분이 분할되어 프로이트가 태어난 곳도 다른 나라 (체코슬로바키아) 버렸다. 프로이트는 어릴 적부터 똘똘하고 공부를 잘해서 부모의 사랑과 기대를 많이 받고 자랐다. 9 대식구가 침대방 있는 집에 살았는데 프로이트에게만 독방을 주었다고 한다. 프로이트가 공부하는데 시끄럽다고 해서 여동생의 피아노를 처분해 버려 여동생이 두고두고 서운해 했다고 한다.

 

프로이트는 비엔나 의과 대학을 다녔는데 순수 과학이나 철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의사가 것은 경제적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프로이트는 자기가 만든 정신분석학이 의학의 일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프로이트의 막내 Anna Freud 유명한 정신분석가가 되어 환자들을 받았는데 그녀는 의대를 나온 것이 아니고 교사를 하다가 아버지에게 직접 정신분석학을 배워 그리 것이다. 유명한 살로메 (Lou Andreas-Salomé) 프로이트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은 -의사 정신분석가로 활동하였다. 살로메는 유명한 남자들과 연애를 많이 했는데 프로이트와도 관계가 있었다. 고등학교 땐가 살로메의 전기를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내용은 기억이 나고 사진만 기억이 난다. 공부도 해야하고 바빠 죽겠는데 살로메 책을 사서 읽었는지 모르겠는데 유럽/서양 문화에 대한 동경심 같은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야기가 데로 샜는데 이렇게 프로이트가 설정한 의학과 정신분석학의 관계는 나중에 문제가 된다. 의사 출신 정신 분석가들은 아무나 정신분석 한다고 나서서 진료실을 열고 환자를 받는 것이 불만이어서 의사들만 정신 분석가가 있게 하려고 시도하다가 정신분석학의 원조인 프로이트와 충돌하기도 하기도 하고 법정 소송이 열리기도 한다. 프로이트는 환자의 문제가 신체 질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면 전통적 의학은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다. 특히 미국에서 의사들의 텃새가 가장 심했는데 요새는 의사나 심리학 박사 또는 사회사업 치료사들을 정신분석가 훈련과정에 받아준다. 그러나 전공은 받아주지 않는다. 프로이트의 고장 유럽에서는 개방적이라고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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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r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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