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2018.04.08 09:03


네덜란드인들은 맨해튼을 원주민들로부터 24 주고  샀다는데 그로부터 50 후에 1664 영국인들은 힘으로 뺏았었다. (맨해튼을 24 주고 샀다는 이야기엔 여러가지 이견이 있긴 하다. 판게 아니라 빌려준 것이라든지 현재 가격으로 환산하면 24불보다 훨씬 많은 액수라든지 하는 애기들이다.)  그렇다고 네덜란드 인들과 영국인들이 피를 흘리며 싸운 것도 아니고 뉴욕의 네덜란드 인들은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네덜란드 후손 뉴욕커 들은 초기 정착자의 이점과 기득권으로 대접을 받고 살았다.

 

맨해튼에서 역사적으로 제일 흥미로운 건물이 Federal Hall 것이다. 뉴욕 증권 거래소 (New York Stock Exchange) 바로 옆에 위치한 건물에 봤더니 커다란 현수막에 첫번째 수도, 첫번째 대통령, 첫번째 의회라고 쓰여 있다. 이곳이 미국의 첫번쨰 국회 의사당이었고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 취임식을 가졌던 곳이라는 뜻이다. 현재 있는 건물은 사실 19세기 중반에 재건축된 건물이니 실제로 초대 대통령이 취임식을 가졌던 곳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신전처럼 지은 이유는 그리스 시대의 민주주의와 로마시대의 공화정을 지향하는 의미라고 한다. 백악관이나 제퍼슨 기념관 수도 워싱턴 디씨의 건물들도 로마시대 양식으로 지은 것을 보면 미국 사람들에게 고대 로마 제국은 모델 국가였던 모양이다. 하긴 따지고 보면 모든 서양국가에게 망한 1500년이나 되는 로마 제국은 되고 싶은 나라였는지 모른다



Federal Hall 바로 길에 나무 기둥이 박혔던 흔적들이 줄지어 남아있다. Wall Street 이름이 유래한 나무로 만든 방어벽 (palisades) 흔적인 것이다. Federal Hall 벽이 있었던 자리의 바깥쪽 (북쪽) 있고 뉴욕 증권거래소는 안쪽 (남쪽) 있다



비둘기 바로 아래 사각형이 월스트리트 방어벽의 기둥이 박혀있던 흔적이다. 그 흔적이 멀리 보이는 겨회 쪽으로 계속 이어진다. 




월스트릿에서 북쪽으로 20 가량 걸어가면 Canal Street 중심으로 차이나 타운이 나온다. Canal street 도시의 폐수가 고여 있던 연못의 물을 빼내기 위해 만들어진 수로 (canal) 있었던 자리를 복개하여 만들어진 거리이다. 당시에 악취 등의 문제로 저소득층이 살던 지역이고 차별 받던 중국 이민자들이 19 세기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당시 중국 이민자들은 여러가지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당시 미국은 노동력 충원을 위해 중국 사람들의 이민을 받아들였는데 중국인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여자들은 받아들이지 않아서 여성 비율이 100 명당 1명도 안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시민권을 가진 미국 여성이 중국 남자와 결혼하면 미국 시민권을 박탈하기도 했다. 가끔 아이리쉬 여자들과 결혼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아일랜드 이민자들도 당시엔 흑인들과 동급으로 차별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지금 차이나 타운은 관광 명소가 되었고 새로운 중국 이민자들이 자리 잡기엔 너무 비싸 졌다. 차이나 타운 바로 (북쪽) Little Italy 있다. 19세기엔 이탤리언들도 차별받는 이민자 그룹이었고 가난한 동네에 자기들끼리 몰려 살았다. 남부 이태리 출신 사람들은 백인의 범주에 넣어 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한때 마피아의 근거지이기도 했고 대부 같은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Little Italy 라는 커다란 간판을 빼고 별로 볼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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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018.03.23 09:45

미국 역사 기행 – 뉴욕시 -1


뉴욕시 문장



제임스타운에 영국인들이 정착한지 2년 뒤인 1609 년에 네덜란드에서 보낸 헨리 허드슨이 뉴욕에 도착했다. 그는 아시아로 갈 수 있는 뱃길을 찾아 보려고 맨하튼 섬 서쪽에 있는 강을 따라 올라가 봤지만 인도나 중국으로 가는 길은 물론 발견하지 못했다. 대신 강에 비버가 아주 많이 산다는 것을 발견했다. 후에 헨리 허드슨은 선원들이 반란 때문에 목숨을 잃었지만 이름을 남겼다. 맨하튼과 뉴저지 사이를 흐르는 강을 허드슨 강이라 부르는 것이다. 허드슨이 발견한 비버의 털가죽은 유럽에서 모자와 코트의 재료로 아주 인기가 많았고 네덜란드 사람들이 맨하탄에 정착하게 되는 주요 경제적 동기가 되었다. 비버는 뉴욕시를 상징하는 문장에 들어있고 뉴욕 주를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뉴욕시 문장에는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풍차와 엣날 네덜란드 사람들이 즐겨입던 Knickerbocker 바지도 보인다. 뉴욕 농구팀 이름 (Knicks) 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헨리 허드슨이 다녀간지 15년쯤 (1624) 네덜란드 인들이 맨해튼 남단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뉴욕의 원래 이름은 암스텔담이다.  제임스타운에서도 그러했듯이 정착 초기에 방어를 위해 요새를 지었다. 맨해튼 남단에 Battery park 있는데 요새를 방어하던 대포들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그러니 배터리 파크는 뉴욕시가 시작된 곳이라 있다. 네덜란드인 들이 사는 지역이 커지면서 맨해튼 남단을 가로 지르는 담을 쌓아 원주민과 영국인들의 공격에 대비했는데 자리에 생긴 이름이 Wall street 이다.




(계속)


Posted by krkim
책 - 일반2018.03.23 09:28

 

부시의 비극



내가 스스로 진보라고 생각하고 보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된 계기 주요 이유가 미국 대통령 부시이다.   부시의 비극 (The Bush Tragedy by Jacob Weisberg) 이라는 책은 제목만 봐도 부시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쓴 책 임을 알 수 있다.  하긴 요새 부시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쓴 책을 찾기도 어렵긴 할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부시의 비극인 이유는 부시를 셰익스피어 비극에 나오는 왕자에 비교했기 때문이다.   부시는 마흔이 넘을 때까지 아버지의 그늘에서 자라면서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싶어했고 대통령이 되자 자기는 아버지와 다르다는 것 즉 아버지 덕에 대통령이 된 아버지의 아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다고 저자는 서술한다.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게 된 이유 중 하나가 결국 그런 동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시의 실책으로 미국이 이라크 수렁에 빠진 것은 부시 자신의 역사적 평가는 물론이고 아버지 부시의 업적과 부시 가문의 평가도 함께 쓰레기 통에 빠뜨리는 결과를 가져왔고 결국 미 제국이 세계의 지도자로서의 위치를  잃어버리고 내리막 길로 들어서게 한 계기까지 될 것이라고 쓰고 있다.


아버지 부시는 아들 부시의 임기가 실패로 끝나가는 것을 깨달으면서 공식 석상에서 울기도 했다고 한다.  “아빠” 부시와 “엄마” 부시는 사실 장남,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은 고사하고 정치를 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들 부시는 나이 마흔 가까이 될 때까지 제대로 된 직장을 커녕 술만 먹던 집안의 말썽 꾸러기였던 것이다.  어머니 바바라 부시의 친구가 집에 놀러 왔을 때 할머니가 다 된 엄마의 친구에게 요새 성생활이 어떠냐고 물어서 어머니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그래서 부시가 정치를 하겠다고 나섰을 때 어머니 바바라 부시는 말렸다고 한다.   둘째 아들 젭 부시가 어버지를 이어 정치가가 될 것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괜히 능력도 없는 아들 조지 부시가 나서서 둘째 아들의 앞길을 막을까 염려했다는 것이다.  조지 W부시의 동생 젭은 형보다 키도 크고 똑똑해서 부모의 총애를 받고 있었고 그 때문에 조지 W 부시가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다고 한다.   장남 조지 W 부시의 역사는 집안에서 힘을 써서 좋은 학교에 들여보내 주고 직장을 잡아주고 사업을 시작 하도록 도와주면 그때마다 실패하는 것이었다고 저자는 쓰고 있다.   사실 아들 부시가 대통령이 된 것도 부시 가문의 후광에 힘입은 것이었는데 결국은 실패로 끝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부시는 거만한 사람이라고 한다.  부시의 거만함은 주로 그가 부시 가문의 장자라는데서 온다.  부시는 물론 자기 아버지가 41대 대통령이기도 하지만 할아버지도 상원 의원을 지낸 사람이고 부시의 할머니는 워커 Walker 가문의 여자인데 (그래서 조지 Walker  부시) 이 워커 집안이 한때는 부시 집안보다 훨씬 돈도 많고 더 잘나가는 집안이었다고 한다.  메인 주에 있는 부시 집안의 여름 휴양지는 원래 워커 집안의 별장이었다.   부시의 거만함을 타고난 특권 의식sense of entitlement 이라고도 표현한다.   부시는 대통령에 취임하자 마자 비서실장에게 배고픈데 햄버거가 왜 안 나오느냐고 호통을 치기도 하고  (대통령의 간식을 챙기는 일은 백악관 비서실장의 일이 아니다)  부시의 브레인이라고 불리는 정치 보좌관 칼 로브에게 자기의 옷을 걸게 하기도 하면서 자기의 위치를 확인시키기도 한다고 한다.


부시의 거만함은 역설적으로 열등감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부시의 열등감은 완벽하다고 느껴졌던 아버지의 그늘과 그런 아버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에 주로 기인한다고 한다.  또 부시는 부시라는 이름에 힘입어 고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미국의 최고 학교만 골라서 다녔지만 반 엘리트 주의자가 되었는데 그런 학교에 다니면서 느꼈던 지적 열등감 때문이라고 한다.   부시의 참모들은 부시의 그런 심리를 알고 부시의 열등감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조언하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빌 클린턴은 인수인계를 하기 위해 부시를 만나 대화를 나눈 뒤 사석에서 평가하기를  “바보는 아닌데 아무것도 모르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중요한 결정을 하는데 별로 고민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버지 부시는 중요한 정책 결정을 할 때 회의를 통해 여러 사람의 찬반 의견을 듣고 고민하며 결정했는데 아들 부시는 그런 방식을 우유부단한 것이라고 받아들였고 그래서 부시는 직관적으로 신뢰하는 소수의 참모의 의견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넬슨 만델라는 부시를 비젼이 없는 지도자라고 흉본 적이 있는데 부시는 대통령이 되고 싶은 욕심은 있어도 미국이라는 나라를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가겠다는 생각은 없던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부시의 정책은 부통령 체이니와 정치 보좌관 칼 로브에 의해 크게 좌우되었다.


부통령 체이니는 스스로 대통령이 되겠다는 정치적 야심이 없지만 대통령의 권한을 입법부나 사법부에 비해 훨씬 더 크게 확대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닉슨 행정부에서 일하다가 닉슨의 하야를 지켜보면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체이니는 20 대에 하원 의원 보좌관부터 시작해서 백악관 비서실장 (포드 대통령),  하원의원 (6선), 공화당 원내총무, 국방장관 (아버지 부시) 등등을 거치면서 워싱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행정부와 입법부를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 법의 헛점이 무엇인지 등등에 통달한 사람이라고 한다.  정치적 경력이라고는 실권이 많이 없는 텍사스 주지사를 지낸 것 밖에 없고 (텍사스는 부지사가 실권이 많다고 한다) 게다가 실무에 별 관심도 없는 부시는 체이니가 유도하는 대로 따라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백악관에서 체이니의 비서실이 부시의 비서실보다 더 크다고 하고 언론에도 대통령 비서실장보다 부통령 비서실장 (스쿠터 리비) 가 더 많이 오르내렸다.   (리비는 체이니가 시킨 일로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부시가 감형을 해 주었다)


체이니는 국방장관으로 자신의 옛 직속 상관이던 럼스펠드를 천거하는데 (체이니는 럼스펠드의 비서관을 지낸 바 있다) 그는 체이니 이상으로 워싱턴의 생리에 대하여 잘 아는 사람이다.  럼스펠드의 경력은 거의 체이니와 똑같다.  백악관 비서실장 (포드), 국방장관 (포드), 하원의원 등을 역임했다.   닉슨은 럼스펠드를 “겁나는 개자식 (ruthless little bastard)” 라고 불렀을 정도로 독한 성질을 가진 사람이라고 한다.   (닉슨이 꼭 부정적인 의미로 그렇게 부른 것은 아니다)  그 독한 성질로 럼스펠드는 아버지 부시를 여러 번 못살게 굴었다고 한다.  아버지 부시의 출세길을 막으려하기도 하고 레이건 정권 때 아버지 부시와 부통령 자리를 놓고 경쟁하기도 했다.  저자에 의하면 아버지 부시는 정치인치고 점잖은 사람이라 남에 대하여 나쁜 말을 잘 하지 않는데 예외가 럼스펠드였다고 한다.


아들 부시가 아버지 부시가 가장 싫어했던 정적 럼스펠드를 국방장관에 기용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 부시의 친구들은 놀라면서 말렸다고 한다.  아버지 부시의 비서실장이었던 제임스 베이커는 아들 부시에게 너 럼스펠드가 네 아버지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하지 라고 까지 얘기했다고 한다.   아들 부시가 럼스펠드를 받아들인 것 자체도 아버지 부시와의 차별화의 일환이라는 시각도 있다.  아버지 부시의 정적이었던 럼스펠드는 결국 부시가의 몰락에 큰 역할을 담당한다.


 


체이니와 럼스펠드 그리고 네오콘이라고 불리던 신보수주의자들에게 부시는 아주 이상적인 대통령이었다.  그들이 유도하는 대로 순순히 따라가 주었기 때문이다.   네오콘들은 유대인 출신들이 주류를 이루는데 왕정이나 신정 아니면 군부 독재 체제이던 중동 국가들을 힘으로 미국식 민주주의 체제로 바꾸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중동 국가들이 친 이스라엘 겸 친 미 국가가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또 그들은 중동 산유국들을 군사력으로 제압하고 통제할 수 있으면 중동의 석유를 차지하고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한다는 1석 2조 (또는 3조) 의 소득을 얻을 수 있다는 꿈을 부시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꾸어오고 있었다.   평생 아버지 덕에 산다는 시각을 떨쳐버리려 했던 부시는 아버지 부시가 쿠웨이트 전쟁 승리 직후 이라크 대통령 후세인을 살려둔 것이 실수라는 시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후세인을 제거함으로써 자기가 아버지가 못한 일을 해냈다는 평가 즉 자기가 아버지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부시의 두뇌라고 불리던 칼 로브는 나름대로 미국에서 공화당의 영구 집권을 꿈꾸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보수 기독교 세력이 정치 세력화함으로써  그 꿈을 이루려 했다.   칼 로브 자신은 무신론자에 가까운 사람이지만 선거가 있을 때마다 보수적 기독교인들을 움직일 수 있는 이슈들 – 낙태, 동성연애 결혼, 줄기세포 연구 – 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주로 남부와 중서부에 많이 거주하는 보수 기독교 세력은 이에 대하여 열렬히 반응했고 이런 책략은 부시가 텍사스 주지사가 되고 미국 대통령에 두번이나 당선되는 데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부시도 스스로 다시 태어난 (born again) 기독교인 즉 아주 보수적인 기독교인인 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부시 집안은 원래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교파인 성공회 Episcopal Church 계통의 교회에 나가는 집안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들 부시는 어머니 부시와 신학 논쟁을 벌인 적도 있다고 한다.  아들 부시가 다시 태어나는 경험 (born again) 을 않으면 천당에 가지 못한다고 우기자 어머니가 반박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빌리 그래함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봤는데 돌아온 대답이 왜 당신들이 신의 결정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느냐는 것이었다고 한다 (사실 이 대답은 어떻게 기독교를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좀 무책임한 대답이다). 


 현재 미군은 이라크를 점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그다드의 그린 존이라고 불리는 요새 안에 갇혀있는 꼴이라고 한다.  역사적 아이러니는 이 상태가 미국 독립 전쟁 당시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의 군대라는 것은 산적 비슷한 오합지졸로서 대영제국의 정규군과는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워싱턴의 전략은 도망 다니면서 게릴라 식으로 영국군을 괴롭히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7년을 끌자 영국으로서는 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포기해 버린 것이다 (물론 프랑스라는 다른 요인이 있기도 했지만).  또 다른 역사적 비교 대상은 베트남 전쟁과 구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침공전이다.  소련은 아프카니스탄을 침공했다가 9년 동안 국력을 소비한 뒤 퇴각했는데 이는 소련이 망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 부시는 아들 부시를 구하기 위하여 럼스펠드를 국방장관 직에서 몰아내려고 애쓰기도 하고 옛 비서 실장 제임스 베이커에게 부탁해 이라크 스터디 그룹이라는 것을 만들어 이라크 문제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햇다.  내용은 이라크에서 철수하여 병력을 아프카니스탄으로 돌리고 이란과 시리아 등과 대화하여 외교적 해결을 강구하라는 것이었는데 아들 부시는 이를 무시해 버렸다. 대신 부시와 체이니는 오히려 중동에서의 확전을 꿈꾸고 있다고 한다.  이란을 폭격하려는 것이다.  며칠전 미국 공군 참모총장이 해임되었는데 공식적인 이유는 핵미사일 관리 소홀이었지만 혹시 이란의 공습에 반대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다. 

이라크 전의 실패로 미국은 세계 무대에서의 지도적 위치가 현저히 약화되었다.  국력의 소모는 둘째치고 그것보다도 정의와 인권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완전히 퇴색된 것이다.  따지고 보면 미국이 정말 정의와 인권의 나라였던 적이 있었던가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예전에 중국의 천안문 사태 등에 대하여 비판할 때 어색하지 않은 정도는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정당한 이유 없이 전쟁을 일으켜서 수십만명의 목숨을 빼앗은 나라, 대통령이 고문을 하도록 지시하는 나라, 악명 높은 관타나모 수용소와 이라크 감옥 (아부 가립) 등등 세계인들에게 불의의 나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부시는 자기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 대해서 별로 걱정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 하나님이 시켜서 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자기는 걱정이 되서 잠을 못 자는 경우도 없다고 기자에게 이야기 한 바 있다.   부시는 측근에게 애기하기를 클린턴이 퇴임 후에 강연료나 인세등으로 돈을 많이 벌었는데 자기는 그것 보다 더 많이 벌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부시의 이야기는 본인에게는 비극이 아니고 희극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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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rkim
TAG 부시
책 - 일반2018.03.23 09:16

신이라는 망상과 신의 언어

The God Delusion & The Language of God




The God Delusion 이라는 책과 The Language of God 이라는 책을 동시에 읽었다. 신이라는 망상이라는 책은 제목대로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종교를 비판하는 책이고 신의 언어라는 책은 과학자로서 종교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쓴 책이다. 


신의 언어


신의 언어를 쓴Francis Collins 라는 사람은 미국 국립 인간 유전자 지도 연구소 (National Human Genome Research Institute, NHGRI) 소장으로서 2000 년도에 백악관에서Craig Venter 라는 사람과 함께 인간 유전자 지도의 초안을 완성해 발표한 유명한 과학자이다. 그가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주 이유 중 하나는 인간에게 선악의 개념과 도덕적 규칙이 있다는 것이다. 왜 인간에게 양심이 있다는 것 남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충동이 있다는 것이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그것도 기독교의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잘 모르겠다. 아마 존재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어야 되는데 신외에는 인간이 동물들과는 달리 선악에 대한 기준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인 것 같다. 신의 존재를 지지하는 또 하나의 이유로 그는 Anthropic Principle 를 든다. 이는 지구와 우주가 인간이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다. 물리학 법칙이 조금만 달랐다거나 지구의 공전 괘도가 조금만 달랐다거나 하면 인간이 존재할 수 없었을텐데 신이 관여해서 인간이 존재할 수 있도록 우주를 디자인했다라는 논리인 것 같다. 그 밖에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그의 딸이 대학교에 다닐 때 강간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법인은 끝내 잡지 못했는데 그 고통을 신앙의 도움으로 극복했다는 것이다. 


프란시스 콜린스는 그러나 성격을 문자그대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원리주의적 기독교는 배척한다. 특히 그는 진화론을 옹호하는데 진화론을 지지하는 증거는 화석 뿐 아니라 인간과 동물의 유전자의 관계에서도 발견된다고 주장한다. 동물의 유전자와 인간의 유전자를 비교해 보면 같은 조상에서 진화해 왔음이 거의 확실시 된다는 것이다. 그는 신이 인간을 진화를 통해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콜린스는 종교가 과학을 배척하면 결국 종교가 위축된다고 주장한다. 무신론자들은 물론 이 책이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약하다고 당연히 비난하지만 보수적 기독교인들도 이 책을 그리 반기는 것만 같지는 않다. 



신이라는 망상


Oxford 대학교 교수이자 생물학자인 리차드 더킨스 (Richard Dawkins) 는 아마 현재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무신론자가 아닌가 싶다. 이기적인 유전자 (The Selfish Gene, 1976) 라는 책으로 유명해진 그가 2006년에 쓴 “신이라는 망상” (The God Delusion) 도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더킨스는 종교 경전을 문자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극단적/근본주의적 종교 뿐 아니라 아예 종교 자체를 없어져야 할 것으로 보는 입장인 것 같다. 


더킨스가 없다고 주장하는 신은 유대교와 그로부터 파생된 두 종교 즉 기독교와 이슬람교 신자들이 전통적으로 믿는 신을 말한다. 전지 전능하고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고 사람들의 기도에 응답하는 인간사에 직접 간여하는 신이다. 이런 신은 인격신으로서 사람처럼 기뻐하고 화도 내고 질투하기도 한다. 그는 이런 신이 존재한다는 주장자체가 하나의 가설인데 그 가설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또 이런 신이 존재한다는 가설을 성역으로 여기고 무조건 믿으라고 강요하지 말고 그 가설이 옳은지 공개적으로 토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선 전공이 진화론인 더킨스는 창조론이 틀렸음을 주장한다. 또 인간에게 도덕적 규범이나 이타성 같은 것도 진화론적 관점에서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는 주장한다. 그는 또 기도가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 결과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없다). 물론 그렇다고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완벽하게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신이 존재할 가능성과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반반이라는 뜻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여러가지 증거로 볼 때 신이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존재할 가능성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라고 말한다.


더킨스는 또 종교가 인간에게 해롭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전통적 종교가 사람들에게 과학과 이성을 무시하도록 가르치기 때문이다. 또 종교 경전의 문자 그대로의 해석 때문에 말도 안되는 교리 때문에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한다. 종교는 또 사람들 사이에 갈등을 증폭시키기도 한다고 한다. 종교가 없었으면 다른 민족간의 갈등이나 전쟁도 그렇게 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특히 아이들에게 어릴 때 종교적 교리를 주입시키는 것은 아동 학대라고 주장한다. 

신이 존재하는가 아닌가에 대한 문제에 대하여 누구나 다 동의할 수 있는 답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신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할 것이고 또 이제까지 그 신의 존재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씨름해 왔을텐데 그에 대해 시원한 답이 나왔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없다. 더킨스는 일단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도들이 믿는 신은 인격신으로서 세상사에 계속 간섭하고 기도를 들어주는 신이라고 규정한 뒤 그런 신이 존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라고 주장하지만 그도 신이 없다 라는 완벽한 증명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따져서 믿는것도 아니고 증거가 있어서 믿는 것도 아니고 믿고 싶어서 믿는 것이니 신이 없다고 누가 증명했다고 한들 종교를 믿던 사람이 갑자기 믿지 않게 되지도 않을 것 같다. 혈액형이 성격과 관련이 있다는 증거가 없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혈액형 성격이론을 믿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만일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면 종교는 인간에게 해롭기만 한 것일까?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종교가 인간에게 해까지는 아니더라도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교회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내고 있는가? 종교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은 먼저 중동 여자들 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운전은 왜 못하게 하나? 남자들과 함께가 아니면 외출도 못하게 해서 남자아이라도 데리고 나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머리 (또는 온몸) 를 가리고 다니는 것도 답답해 보이고. 다른 종파의 남자와 연애를 했다고 돌로 쳐 죽이기도 하고. 이런 문제가 꼭 종교 때문이 아니라 문화 때문이라고 말 할 수도 있지만 종교적 교리에 바탕을 둔 문화적 규범이기 때문에 더 융통성이 없고 바꾸기 어려운 것이 사실일 것이다. 1700 여년 된 문화 유적인 불상을 폭파시키는 것을 보면 가서 한대 주어 박고 싶은 생각이 들때도 있다. 종교가 없었으면 중동이나 인도/파키스탄 북 아일랜드등의 분쟁도 그렇게 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일부 기독교인들은 이슬람교는 “가짜” 신을 섬기는 종교이니까 그런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도 마녀 사냥, 십자군 전쟁, 과학자 화형등 필요 없이 사람들에게 피해 주는 일을 많이 했다. 사실 현대 서구 사회는 많이 세속화되어 되어 있고 정교 분리가 되어 종교 때문에 말도 안되게 피해보는 경우는 중동의 경우보다 덜하다. 그래서 현재 중동에서의 종교적 영향력을 서구 중세의 암흑시대와 비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유독 미국에서는 특히 근래에 와서 보수 기독교가 정치에 끼치는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그래서 줄기 세포 연구도 행정부에서 지원하지 않고 외교 정책 결정도 종교적 교리에 의해서 영향을 받기도 한다. 신이 세상일을 모두 주관한다는 종교인들의 믿음은 사실 지구 온난화 같은 문제에 대하여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원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적도 있다. 사실 예수의 재림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다라는 사람 중에는 지구 온난화가 그런 징조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일부 종교인들은 현세에서의 삶이나 그 삶의 현장 즉 지구는 별 의미가 없는 것이고 저 세상 (천당) 에서의 삶이 진짜 중요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태도는 당연히 현세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또 박노자씨가 얼마전에 한겨레 신문에 썼듯이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보수적으로 만드는 경향도 있다. 미국에선 심지어 다시 정교 일치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신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종교가 인간에게 나쁘기만 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종교는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크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사람들이 어릴 적 부모에게 느꼈던 느낌 (신뢰감, 안정감, 부모만 옆에 있으면 만사가 다 괜찮을 것이라는 느낌) 의 신이 자기를 뒤에서 돌봐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여러가지 경우에 심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또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를 하면 소원이 이뤄질 가능성도 조금 커질 수 있다고 본다. 꼭 신이 직접 나서서 물리/자연 법칙을 무시하고 소원을 이뤄주기 때문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이 더 열심히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일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도만 한뒤에 신만 믿고 아무일도 하지 않는다면 역효과가 나는 경우도 있겠지만.) 또 장례식을 치르는 사람들에게 신이 있고 천당이 있다는 믿음은 큰 위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지옥에 갈까봐 더 불안하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종교를 믿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들이 천당에 간다고 믿는 것 같다. 종교는 또 사람들이 자기를 낮추고 겸손한 태도를 가지게 하는 효과도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종교는 절박한 처지에 처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모진 삶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한다. 

종교에서 해악은 없애고 좋은 점만 있게 할 수는 없을까? 만일 종교에서 비롯된 해악이 종교의 원래 취지때문이 아니라 종교 교리를 오해한 종교 지도자들 때문이라면 종교인과 비 종교인 모두 만족할 수 있을만한 해법을 찾을 수도 있다고 본다. 사실 종교 경전에 대한 해석은 시대에 따라 바뀌어 왔다. 인종 차별도 옛날에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정당화 한적도 있다. 요새 성경이 인종차별을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성차별도 성경에 바탕을 두고 정당화 해 왔지만 현대에 와서는 많이 나아졌다. 그러니까 종교 교리도 시대에 따라 재해석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요새 천동설을 믿는 기독교인이 어디에 있는가? 중세의 천동설이 요새의 창조론이다. 진화론이 기독교 교리에 반대되는 것이라고 많은 기독교인들은 믿고 있고 특히 미국의 종교 지도자들은 가르치도 있다. 종교가 과학을 거부하는 이유는 종교인들이 절대적인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종교 교리가 시대에 따라 변한다고 하면 싫어하고 성경 구절이 문자대로 해석하는 것이 성격의 권위를 더 높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9.11 으로 표면화 된 국제적 갈등의 원인의 하나가 사람들의 종교적 자세이고 세계 정치 경제를 좌우하는 미국의 정치세력이 좀 비이성적인 이유도 다수 미국인들의 종교적 입장이라는 인식이 작금의 종교 개혁 운동 또는 반종교 운동의 이유라고 본다. 그래서 미국엔 스퐁주교 같은 사람이 기독교를 구출하자고 외치고 있고 한국에서는 김용옥씨가 전통적인 기독교 신관을 바꾸자고 주장한다. 또 더킨스 같은 사람이 쓴 반종교적 서적이나 다빈치 코드 같은 책이들이 베스트 셀러가 되고 있다. 내가 보기엔 종교적인 사람들과 이성적인 사람들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종교로 기종 종교가 개혁되는 것이 가장 건설적인 해법일 것 같고 나로서도 종교를 받아들이기 더 쉬운 길인것 같은데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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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rkim
책 - 역사, 전기2018.03.22 12:03




부자들의 나라
 
오랜 만에 한국을 방문하려고 비행기 표를 사면서 비즈니스 석은 얼마인가 물어보았다.  지난 번에 한국 갔다 오는 비행기의 이코노미 석에 앉아 졸다가 목 디스크에 걸려 몇 달 고생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조금 더 비싸면 살까 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4000불 가까이 차이가 나서 포기했다.   이코노미 석 가격의 세배 가까이 되는 것이다.  일등석은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한 만이천불 (천오백만원) 쯤 한다고 한다.   3등석 (이코노미) 대신 1등석이나 2등석 비행기 표를 자기 돈으로 사면서 아깝지 않다고 느낀다면 내 기준으로는 돈이 많은 사람 -- 부자이다.  
 
마침 비행기 안에서 읽은 책이 “부자들의 나라” Richistan 라는 책이다.  Wall Street Journal 기자인 프랭크 (Robert Frank) 라는 사람이 미국의 부자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하여 취재하여 쓴 책이다.  저자는 미국 내에 부자들만의 세계가 따로 존재한다고 규정하면서 먼저 부자들을 세 단계로 나눈다.  
 
“하류층” 부자는 재산이 백만불에서 천만불 정도 되는 사람으로서 평균적인80만불 (10억?) 정도되는 집에 살고 주 수입원은 월급이나 소규모 사업이다.  미국에 이런 하류 부자들이 7-8백만 가정 정도 된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을 부자들 사이에선 “진짜 부자” 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중류층 부자는 재산이 천만불에서 일억불 정도 되고 3백만불 이상 되는 집에서 살고 주 수입원은 소유하고 있는 사업체이거나 금융 재산 등이다.  미국에 이런 부자들이 약 2백만 가정이 있다고 한다.
 
상류층 부자는 1억불에서 10억불 정도의 재산을 가진 사람들로서 기업체를 가지고 있거나 가지고 있는 재산이 재산을 만드는 사람들로서 천만불이 넘는 집에서 산다고 한다.  미국에 이런 사람들이 수천명 정도 된다고 한다.
 
BMW 나 Mercedes 또는 명품 가방이나 옷 등이 잘 팔리는 이유는 하류층 부자들이나 부자가 아닌 사람들이 자기들이 부자로 보이기 싶어서 라는 것이다.  중 상류 층 부자 중에는 이렇게 대중화 된 고급 상품을 피하고 대중에게는 덜 알려져 있지만 자기들끼리는 아는 초 고가품을 선호한다고 한다.  또 하류 부자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적인 공화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아주 강한데 비해 재산을 증식해 진짜 부자기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덜한 상류 부자들 중에는 환경 문제나 사회 정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도 많다고 한다.
 
부자들은 여러 가지 시설이 있는 집에 살고 있고 또 그런 집이 여러 채 있어 집안 일을 돌보아 주는 사람들이 필수적인데 이렇게 집 관리 해 주는 사람들의 연봉이 10만불 (억대) 되는 경우도 있고 집사장 (Butler, house management) 학교도 있어서 대학 졸업 뒤 만불 (천만원) 대의 등록금을 내고 이런 학교를 다니는 사람도 많이 있다고 한다.  요리사, 청소부, 정원사 새 먹이 주는 것만 전담하는 사람 등 수십명이 넘는 인원을 여러 채의 집 관리를 위해 고용하고 있는 부자도 많다고 한다.  하인 학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부자집 아이들을 모아 놓고 재산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학교도 있고 또 부자들끼리 돈이 많아서 생기는 고민들을 서로 털어놓고 서로 상담해 주는 정기 모임도 있다고 한다.
 
***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려고 탑승 구 앞에 의자에 앉아 길게 줄지어 탑승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늘 거의 맨 나중에 비행기를 탄다.  어차피 자리는 정해진 것이고 미리 타 봤자 좁아터진 이코노미 석에 열네 시간 묶여 앉아 있어야 하는데 뭐 하러 줄까지 서가며 일찍 타려고 하는가?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이 거의 없어져서 비행기를 타려 하는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승무원이 비행기를 타려는 내 보딩 패스를 기계 안에 넣으니 빨간 불이 들어오면서 경고음이 나는 것이다.  그걸 보더니 승무원이 다른 티켓을 빼 주면서 비즈니스 클래스로 업그레이드 되셨습니다 한다. 난 멍하게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티켓을 받아 들고 혹시 맘 변할까 봐 서둘러 비행기에 올랐다.   이코노미 석 타고 한국 갈 때 20시간쯤 느껴지던 비행시간이 돌아올 땐 한 세시간 쯤으로 느껴졌다.   무엇보다 편하게 잠을 길게 잘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가지 나쁜 점도 있긴 하다.  비행기에서 거의 잠을 못 자고 내렸을 땐 그날 밤에 잠이 잘 와서 시차를 금방 극복했는데 비행기에서 잘 자고 내렸더니만 밤에 잠이 안 와서 새벽 5시인 지금도 정신이 말똥말똥 한 것이다.   이것도 부자들의 고민인가?


2009년에 쓴 글입니다. 

Posted by krkim
TAG Richstan
여행2018.03.20 12:07

영국 최초 식민지 제임스타운과 미국 독립전쟁의 최후의 결전지 요크타운보다 사실상 관광지로 유명한 곳은 사이에 위치한 윌리암스버그이다. 지역을 합쳐 역사적 삼각지대 (Historic triangle) 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국인들의 세력이 커가고 인디언들이 후퇴하면서 영국 정착민들은 제임스타운에서 조금 내륙 쪽으로 들어간 윌리엄스버그로 본거지를 옮긴다. 제임스타운의 이름은 당시 영국왕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정착민들이 윌리엄스버그로 옮길 당시 영국 왕의 이름을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 18 세기 미국을 재현한 민속촌” Colonial Williamsburg 있다. (Jamestown 작은 규모의 민속촌 17세기를 정착민과 인디언 마을을 재현한 곳이다.) 한국에서는 식민지라는 말이 부정적이고 치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미국에서 그렇지 않다. 자기들이 점령자였고 모국과 싸워 독립에 성공했으니  피해의식이 없어서 그런 모양이다월리엄스버그는 이런 역사적 자원을 바탕으로 관광 산업이 수입원이다.  한때 버지니아 식민지의 수도였지만 독립전쟁 영국군의 공격에 대비해 내륙 (Richmond) 으로 수도를 옮긴 뒤에 도시가 쇠퇴하고 개발이 안되었다. 그런데 오히려 덕분에 옛날 건물들이 남아 있어서 건물들을 바탕으로 민속촌” Colonial Williamsburg 만들고 이젠 버지니아 최대 관광지가 되었다. 물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놀이 공원 (Busch Gardens) 있다. 부시가든은 미국서 제일 많이 팔리는 버드와이저 맥주를 만드는 세계 최대의 맥주회사인 Anheuser-Busch 만든 놀이 공원이다. 놀이 공원 화장실 벽에는 우유보다 맥주가 훨씬 건강에 좋다고 주장하는 문구가 쓰여진 것을 본 적이 있다.

 

Colonial Williamsburg 나는 인연이 없는 모양이다. 오래 여름에 왔을 때는 숨쉬기도 어려울 정도로 너무 더워서 대충 보다 나왔는데 이번에는 춥고 비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포기하고 요크타운 (Yorktown) 으로 차를 몰았다. 요크 타운에는 조그만 박물관과 격전지를 드라이브 하는 코스가 있다. 사실 특별히 것은 없지만 비바람이 몰아쳐도 차안에서 앉아 돌아 있으니 고마웠다. 당시 영국군은 뉴욕과 버지니아 양쪽에 나뉘어 주둔하고 있었고 뉴욕에 주둔하고 있었던 워싱턴은 맨하튼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군의 본진을 공격하고 싶어 했었다. 그런데 남쪽 (서인도 제도) 있는 프랑스 함대가 버지니아 공격을 도울 있다고 하니 군대를 이끌고 뉴욕서 버지니아로 행군한다. 미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행군한 길이 내가 길과 비슷하다. 워싱턴이 주둔하고 있던 Dobbs Ferry 영국군이 주둔하고 있던 맨하튼에서 북쪽으로 30 거리이고 내가 사는 동네의 동네이다. 그곳을 출발해 프린스턴 필라델피아 볼티모어 등을 거쳐 내려 왔다. 따지고 보면 워싱턴이나 나나 따라 최단거리로 내려 왔을 테니 같은 길을 따라 내려온 것이 신기할 것도 없다. 워싱턴도 내려오다 자기 집을 들렸다 왔고 나도 같은 집을 구경하고 내려왔다 ( 신기해 보이려고 그런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 함대는 요크타운 바다에서 영국 함대를 물리쳐 퇴로와 보급로를 막고 미국 프랑스 연합군은 요크타운에 주둔해 있던 영국군을 공격해 항복을 받아낸다. 버지니아에서 대패한 영국은 미국을 포기하고 미국 독립전쟁은 끝이 난다. 프랑스 군은 병력만 지원한 것이 아니라 독립군의 월급까지 빌려 주었다고 한다. 남쪽으로 행군하던 독립군이 중간 (메릴랜드 ) 오다가 월급 주면 간다고 버텨서 프랑스 사령관이 워싱턴에게 돈을 꿔주었다는 것이다. 프랑스 장군은 빌려준 돈을 받았을까? 미국 독립 전쟁을 돕느라 돈을 너무 많이 쓴 프랑스 왕은 세금을 더 걷어 구멍난 재정을 메꾸려다 프랑스 대혁명을 만나 단두대로 향하게 된다.

 

영국군과 항복 조건을 상의했다는 요크 타운 농가. 


그 집 내부. 항복 문서를 사인했다는 방




여행

뉴욕으로 돌아올 건너 Chesapeake Bay Bridge-Tunnel 나름 관광자원이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 True Lies 등에도 등장했던 다리인데 30 넘게 파도를 내려다 보면서 바다위를 달리는 기분이 묘하다.


미국 역사 기행 버지니아


Posted by krkim
책 - 역사, 전기2018.03.17 22:44

신의 진화 (The Evolution of God by Robert Wright)

 



이 책의 요점은 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책의 제목처럼 진화 (변화) 해 왔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구약성서에서 배타적인 부족신이었던 야훼는 신약성서에선 좀더 포용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를 지니는 신으로 “진화” 했다고 볼 수 있다. 뭐 아주 놀랍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비슷한 류의 책과는 달리 이 책은 종교나 신의 존재를 긍정적인 시각에서 보려고 애쓰고 있다. 신 또는 신성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고 인간의 신에 대한 이해가 이렇게 실제로 존재하는 신의 모습에 접근해 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태도는 이 책의 저자 (Robert Wright) 가 쓴 다른 책들 (예를 들어 Moral Animal) 에서도 읽을 수 있다. 

 

요새 서구 지식인 층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종교 (기독교) 를 믿는 사람은 미신 믿는 사람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옥스포드 대학 교수이자 이기적인 유전자 등 베스트 셀러의 저자이기도 하고 현대 무신론자의 대표자 격인 더킨스 (Richard Dawkins) 는 아예 기독교나 이슬람교 같은 배타적인 종교는 공존 아니면 공멸을 염려해야 할 현대 사회에선 인간에게 해가 된다고 보고 미신 타파 하듯이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또 한편 이 책의 저자나 행복 심리학 (긍정적 심리학) 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셀리그만 처럼 종교를 포용하려 하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려는 사람들이 있다. 더킨스가 후자의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템플턴 재단의 연구 지원 즉 돈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는 식으로 비꼬는 글을 쓴 것을 본 기억이 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억만장자인 템플턴이라는 사람이 만든 템플턴 재단은 영적인 문제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를 많이 지원하고 따라서 친 종교적인 연구를 지원하는 경향이 있다.  템플턴 상은 이런 식의 연구에 큰 업적을 남긴 사람에게 주는 상으로 노벨상보다 상금이 많다고 한다.

 

나도 처음엔 더킨스의 입장에 공감했고 수천년전에 씌어진 종교 경전을 문자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믿는 식의 원리주의적 기독교나 이슬람교는 옛날에 계몽운동 하듯이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적이 있다. 이 책의 저자가 정말 템플턴 재단의 영향으로 “친 종교적” 인 책을 썼는지 몰라도 (셀리그만이 쓴 책에 보면 이 책의 저자가 템플턴이 초청한 여러 학자들과 식사했다는 얘기가 나오긴 한다) 요새 난 종교를 좀 더 긍정적인 입장에 보게 되었고 이 책의 저자의 입장에도 상당히 공감을 하게 된다.  그러나 물론 이 책이 “친 종교적” 이라는 말은 좀 지나친 표현일 수 있다.  이 책 저자도 현재 있는 그대로의 종교 (아브라함 계통의 세 종교) 에 대해선 비판적이다.

 

이 책의 내용 중 특기하고 싶은 내용이 몇 가지 있는데 첫째는 종교의 기원에 대한 것이다. 종교의 기원은 인간에게 몸과 분리되는 영혼이 있다는 생각으로부터 시작했고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라는 생각은 꿈 같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생겨났을 가능성이 있으며 영혼이라는 개념은 사람뿐 아니라 동식물이나 나무나 돌, 바람, 해, 달, 바다 등도 영혼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확대되었고 그 중 특히 인간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들의 영혼은 신이라는 개념으로 발달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종교란 이런 신들과의 교감을 통해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환경을 바꾸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바람의 영혼 (또는 신) 에게 기도를 해서 바람을 그치게 하거나 방향을 바꾸게 한다거나 하는 것이다. 또 이런 영혼 또는 신이 개념적으로 통폐합 되면서 신의 숫자가 줄어들었고 결국 유일신 사상까지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비의 영혼과 바람의 영혼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다가 날씨를 통제하는 신이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유대교 (와 그에서 출발한 기독교, 이슬람교) 에서 유일신의 개념이 어떻게 발달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논의도 재미있다. 저자는 유일신 사상이 선지자가 신의 계시를 받고 갑자기 만들어 낸 것이 아니고 서서히 생겨난 것이라 주장한다.  예를 들어 유대인들은 일부에선 엘 이라는 이름을 가진 신을 일부에선 야훼라는 이름의 신을 섬기고 있었는데 두 부족이 합쳐지면서 두 신이 합쳐지게 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성서엔 때로는 엘이라는 이름으로 신을 지칭하고 때론 야훼라는 이름으로도 신을 부른다고 한다 (구약 성서엔 또 다신교처럼 여러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듯한 구절도 많이 있다고 한다). 당시엔 나라마다 또는 부족마다 다른 신을 그것도 여러 신을 믿고 있었고 국가간에 우호적인 교류가 시작되면 다른 나라의 신도 받아들이고 그런 신을 모시는 신전을 만드는 것은 흔한 일이었는데 그러다가 성격이 비슷한 신들은 통합되곤 했다고 한다. 

 

이스라엘 민족의 유일신 사상의 시작은 신이 하나라는 생각이 아니고 자기 민족의 신 만을 섬겨야 한다는 민족주의적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강대국에 둘러싸여있던 이스라엘 내에서 다른 나라와의 교류를 선호하는 개방파와 그를 반대하는 파로 나뉘어 있었는데 반개방파들의 다른 나라 (부족) 의 신을 믿어선 안 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아예 다른 부족들이 믿는 신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유대국가가 아예 망한 뒤라고 한다. 나라가 망했으면 자기 나라의 수호신 즉 야훼에 대한 믿음도 사라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결과일 텐데 유대인들은 거꾸로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가 자신들의 신 (야훼) 의 의도였다고 받아들였다고 한다. 신이 다른 나라를 이용해 신앙심이 부족한 유대인들을 벌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타국 민들도 다 유대신의 통제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따라서 타국 민들이 믿고 있는 신들은 사실 다 가짜이고 자기들의 신이 유일하게 진짜 신이라는 유일신 사상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책의 끝 부분에서 신의 존재를 변호하는 몇 가지 논리를 제시한다.  먼저 인간의 도덕성이 좀 더 보편적인 타당성을 가지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는 것 즉 자기 가족이나 부족을 넘어서서 특별한 관계가 없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국가의 사람들과도 상생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도덕성이 발달 또는 진화해 왔다는 것 자체가 신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개인적인 부탁도 들어주고 감사와 사과도 받아주는 인격적인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물리학자들은 물질의 기본적인 구성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지구와 달의 관계처럼 핵 주위를 전자가 돌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좀 더 최신 이론으로서 튕겨진 기타줄 같은 것 (string theory) 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것이라고 믿기 보다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 신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종교를 좀더 긍정적으로 보게 된 이유는 인간이라는 것이 단세포 생물로부터 진화를 통해 우연히 생겨난 동물일 가능성이 많고 인생이라는 것이 또 인간 세상이라는 것이 다 무의미한 것을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나서부터이다.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게 되어있고 따라서 인생의 의미를 추구하게 되어 있어서 인생의 의미가 없으면 억지로라도 만들어야 하는지 모른다. 종교란 그렇게 억지로라도 만든 의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종교나 신의 개념이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계속 진화/변화할 수 있고 그러면서 차츰 과학과의 모순도 없어지고 논리적 모순도 없어지고 도덕적으로도 더 납득이 되는 것이라면 (즉 신의 개념도 내 블로그의 이름처럼 작업 가설로서 점점 더 타당성이 있는 가설로 발전할 수 있다면) 나는 종교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현재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대로의 종교나 신은 빨리 좀 진화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Posted by krkim
여행2018.03.17 08:54

미국 역사기행   버지니아 (Virginia) - 2


워싱턴의 독립군과 프랑스 연합군이 영국군과의 최후의 일전에서 승리를 거두어 미국 독립 전쟁이 끝난 곳이 버지니아의 요크타운 (Yorktown) 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미국 최초 영국인 정착지인 제임스타운 (Jamestown) 바로 동네이다. 그곳을 향해 조지 워싱턴의 농장을 출발해 95 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달렸다. 95 고속도로는 미국 동쪽 대서양 연안을 따라 북쪽 (Maine ) 부터 남쪽 (Florida) 까지 종단하는 고속도로이다.  뉴욕 , 필라델피아, 보스톤, 워싱턴 DC 동부 최대 도시들을 가로 지르는 도로로서 미국서 가장 차가 많이 다니는 고속도로라고 한다 ( 교통부 Vehicle miles traveled 기준).  미국서 자동차 여행할 때 아쉬운 것은 햄버거와 핫도그 밖에 없는 고속도로 휴게소이다. 어둑어둑해 도착해서 hotels.com 에서 Guest Rating 기준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 시즌이 아니어서 가격이 좋았다.

 

늦게 일어나 아침 먹고 역사적인 제임스타운부터 찾았다. 제임스타운 관광지는 군데로 나뉘어져 있어 헷갈리게 되어있다. Jamestown Settlement 말하자면 민속촌으로 당시 건물들이나 사는 모습을 재현해 놓은 곳이고 Historic Jamestowne 이라는 곳은 실제 최초 정착지이다. 5 거리에 있는데 운영 주체가 달라 입장료를 각각 내야 한다. “진짜제임스타운부터 갔다. 최초 정착지를 제임스 강가의 늪지대 섬에 잡은 이유는 원주민 (인디언) 공격을 막기 위해서 였는데 그곳 지리를 아는 인디언들을 상대로 늪지대는 방어막으로서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습도가 높고 모기도 많고 식수를 구하기도 어려워 초기 정착민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인디언들이 땅을 비워 놓은 이유도 사람이 살기 어려운 땅이었기 때문이다.





제임스타운 최초 정착지. 왼쪽 울타리는 틈이 많아 인디언 화살이 쉽게 통과할 것 같아 보였다. 그래도 대충 만든 것이 아니라 원래 나무 기둥이 박혔던 자국을 따라 재건한 것이라고 한다. 앞에 보이는 제임스 강에서 하선 했을 것이다. 그 지역을 통치하던 포카혼타스의 아버지는 앞에 보이는 대포를 얻기 위해 애를 많이 썼다고 한다. 

 

 

아마추어 고고학자인 듯한 현지 가이드에 의하면 제임스 타운이 최초 영국인 정착지인데도 그보다 13년이나 늦은 매사추세츠 주의 보스턴 남쪽지역 (Plymoputh) 그늘에 가려진 것은 버지니아가 남북 전쟁 남부군의 일원으로서 패배한 주이고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지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또 다른 이유는 매사추세츠 정착민들은 종교의 자유를 위해 것인데 비해 버지니아 정착민들은 영국 투자자들이 벌기 (금을 얻기) 위해 보낸 것이라 미국의 시작으로 모양이 좋지않아서 였다. 사실 제임스타운은 미국의 시작으로 내세우기엔 좀 끔찍한 역사 (식인의 역사) 를 품고 있다. 인디언에 포위되어 굶기 시작한 영국인들은 말, 개, 고양이, 잡아 먹고 나중엔 가죽 구두도 삶아 먹다가 결국 서로 잡아먹기 시작했다. 임신한 부인을 살해해 소금에 절여 놓고 먹다가 들켜서 사형된 남편의 기록도 있고 후에 발견된 소녀의 유골에서도 살을 발라낸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유럽인들의 식민 역사상 식인의 증거가 발견된 곳은 제임스타운이 유일하다. 


금이 발견되지 않은 제임스타운이 경제성을 가지게 되고 따라서 유지 되었던 것은 담배 농사때문이었다. 인디언 공주 포카혼타스와 결혼한 영국인이 바로 제임스타운에 담배를 재배해 영국에 팔기 시작한 사람이다. 제임스타운 식민지 광고를 위해 ( 많은 이주자를 모집하기 위해) 영국에 보내진 포카혼타스는 공기 나쁜 런던에서 1년만에 병에 걸려 죽는다.


 

영국인 정착민들에게 납치당해 기독교로 개종하고 영국인과 결혼하여 

일시적이나마 평화의 시기를 열었던 포카혼타스. 

 



(계속)


Posted by krkim
여행2018.03.16 03:56

미국 역사기행   버지니아 (Virginia) - 1

 

뉴욕서 4-5 일정으로 자동차 여행을 만한 곳은 북쪽으로 캐나다 퀘벡 Quebec (도깨비란 라마 때문에 인기있는), 남쪽으론 버지니아 윌리엄스버그 Williamsburg 정도 까지 일 것이다.  서쪽으로는 펜실베니아 주가 있긴 한데 특별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장소가 떠오르지 않는다 (허쉬 Hershey파크나 아미쉬 Amish마을 정도).  동쪽은 물론 대서양이고 ( 아일랜드 끝에 몬탁 Montauk 있긴 하지만).  아직 추위가 남아있는 3월에 북쪽으로 없고 남쪽으로 차를 몰았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살던 집을 거쳐 포카혼타스 (Pocahontas) 동네이자 미국 최초 영국인 정착지라는 제임스 타운이 있는 버지니아의 윌리엄스버그가 목적지였다.

 

뉴욕서 조지 워싱턴이 살던 Mount Vernon 까지는 차로 시간 정도 걸리고 (242 mile, 390km) 그곳에서 제임스 타운까지는 3시간 정도 걸린다 (150 mile, 240km). 조지 워싱턴의 집은 그가 태어난 곳은 아니고 많은 (아주 많은) 미망인과 결혼한 후에 살던 집이다. 집에서 농장주로서 16년간 살다가 독립 전쟁에 나가 (1775) 전쟁을 치르고 대통령까지 지낸 22년만에 돌아와 (1797) 여생 (2) 보냈다. 날씨가 추운데도 토요일이라 그런지 집에 들어가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있었다. 농장이니까 당연히 대지는 넓었지만 자체는 아무래도 18세기에 지어진 집이라 기대보다 작았다. 농장 입구에 세워진 visitor center 에서 기념품을 사는 사람들 표정에 초대 대통령에 대한 경외감이나 자부심 같은 것이 느껴졌다.  



사진 설명: 워싱턴 집을 구경하기 위해 줄서  모습. 오른 건물이 본관이고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은 servant room 이라고 손님들을 모시고 하인들이 쓰던 건물이라고 한다. (Galaxy Note 8 으로 찍음)




Visitor center 구석에는 농장에서 일하던 흑인 노예의 생활을 보여주는 전시관도 있었다. 자유와 해방과 행복권의 추구를 내세우며 독립전쟁을 이끌었던 워싱턴의 농장에서는 300명이 넘는 노예가 있었다. 전시관에서 안내문을 열심히 읽고 있는 흑인 모녀가 눈에 들어왔다. 워싱턴은 노예들이 쉬는 시간이 없이 일하도록 독려했다고 한다. 경제학자들은 노예제도는 경제성이 낮아서 링컨의 노예 해방이 없었 어도 없어졌을 것이라고 한다. 노동 생산성이 낮아서 먹여 살리는 유지비용이 있다는 것이다. 수백명의 노예를 데리고 농사를 지어도 워싱턴은 빚을 많이 지고 있었다. 워싱턴뿐 아니라 버지니아 농장주 대부분이 영국 상인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었고 그런 점이 버지니아가 독립 전쟁에 참여하는 것에 일조했다고 한다.

 



사진 설명: 워싱턴이 살던 (Mount Vernon).  (Galaxy Note 8 으로 찍음)



당시 대영제국과 독립군과의 싸움은 지금으로 따지면 미국과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과 비슷했다. 그런 전쟁을 승리로 이끈 워싱턴은 물론 대단한 인물이다. 그러나 운도 매우 좋았다. 워싱턴의 독립군이 영국군과 정면으로 맞붙어 이긴 적이 거의 없었다. 이긴 경우는 게릴라 기습 공격에서 치고 빠지는 식이었다. 워낙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라 영국군은 인명 피해를 최소화 해서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 목적이었고 독립군은 도망 다니며 식민지 사람들의 독립에 대한 꿈을 유지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데 미국 땅덩어리가 워낙 커서 도망 다닐 곳이 많았다. 워싱턴의 공적은 춥고 배고픈 상황에서 독립군의 해체를 막고 유지한 것이었다. 반란의 괴수로 찍힌 워싱턴은 중간에 포기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미국 독립 전쟁의 승리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영국을 견제하려는 프랑스 참전이었다.


여행 팁:

볼티모어에 가격이 좋은 게식당이 많으므로 가는 길에 들려가면 좋다.

워싱턴 DC 바로 아래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에 가격에 비해 깨끗한 호텔이 많다.


 

(계속)

Posted by krkim
책 - 역사, 전기2009.05.22 03:54


한국 전쟁

 

왕복 두 시간 뉴저지에서 뉴욕으로 출퇴근하는 지루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오디오 북을 도서관에서 빌려 운전하면서 듣는다. 딱 눈에 띄는 것이 없어 마지못해 빌린 것이 David Halberstam 이라는 사람이 쓴 한국전쟁에 관한 책 THE COLDEST WINTER: America and the Korean War 이다. 예상 외로 재미있어서 목적지에 도착하면 중단하는 것을 아쉬워 하며 차에서 내리곤 했다. Halberstam 이라는 사람은 기자출신으로서 베트남 전에 대한 책으로 유명하고 풀리쳐 상을 받은 사람이다.

 이 책은 저자가 한국전쟁에서 직접 총을 들고 싸웠던 미군 사병들이나 장교들을 찾아 다니며 인터뷰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쓴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저자는 맥아더 장군과 그의 심복인 아몬드 (Edward Almond) 장군을 포함한 지도부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한국전쟁에서 실제로 싸웠던 미군 병사들과 장교들은 대체로 맥아더를 싫어한다고 한다. 한국전에서 그렇게 많은 미군 사상자가 난 것은 그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에서33,000 명의 미군과 415,000 명의 한국인들과 백오십만의 북한사람들과 중국 군이 사망 했다고 한다. )

 한국전쟁은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남침을 허락하고 지원해 달라고 조르던 도중에 당시 미 국무 장관이 애치슨 (Acheson) 이 기자회견을 하는 도중 별 생각 없이 아시아 방어선에 남한을 포함시키지 않은 것이 계기가 되어 시작되었다고 저자는 서술하고 있다. 김일성은 남침 직전 아주 자신에 차 있어서 중국의 모택동이 도와주겠다는 것도 필요 없다고 하면서 중국 특사들을 홀대했다고 한다.

 북한군은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그 후 약 한 달 만에 한미 연합군을 부산 지역까지 후퇴시켰다. 그러자 맥아더는 그 유명한 인천 상륙 작전을 감행하여 북한군을 패퇴시킨 것 까진 좋았는데 인천 상륙 작전의 성공에 취해 중공군의 개입에 전혀 대비하지 않고 압록강까지 한미 연합군을 서둘러 밀어 부쳤다고 한다. 그래서 매복해 있던 중공군의 함정에 빠져 수많은 사상자를 내며 미군 전투역사에 남을만한 대패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사실 많은 현장 지휘관들은 중공군이 개입한 것을 눈치채고 조심스럽게 북진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동경에서 총지휘를 하고 있는 맥아더는 기자들에게 크리스마스까지 전쟁을 끝내겠다고 큰 소리치며 서두를 것을 명령했고 인천 상륙작전 성공 이후 참모들은 맥아더의 지시에 이의를 달지 못했다고 한다. 맥아더의 심복인 아몬드 장군도 그런 상황에 한몫을 했단다.

 맥아더 장군은 자기 휘하 병사들의 안전이나 목숨보다는 자신의 명성이나 역사적 업적을 더 중요시하게 생각했다고 저자는 쓰고 있다. 한국민은 물론 당시 미국민의 영웅이던 맥아더는 명성이나 영향력이 너무 커서 미국 대통령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고 직책은 일본 주둔 연합군 총사령관이었지만 백악관에 대해서 마치 외국 국가 수반처럼 행동했다고 한다. 사실 일본에서 맥아더는 거의 신격화된 대접을 받았다 한다. 트루만 대통령이 만나자고 해도 바빠서 워싱턴에 못 간다고 거부 하자 백악관이 타협해서 워싱턴과 동경의 중간지점에서 만났는데 맥아더는 국방장관은 물론 대통령에게도 경례를 부치지 않았다고 한다.

 맥아더가 참모들의 만류에도 무리하게 인천 상륙작전을 감행한 것도 실리보다는 자신의 명성을 위해 그런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군대를 보내자면 동해안이 훨씬 가까웠던 것이다. 1 차 대전과 2 차 대전을 거치면서 쌓아온 전쟁 귀재의 명성에 걸맞은 과감하고 예상치 못한 상륙작전으로 자기 군 경력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인천 상륙작전의 공을 주로 자기에게 돌리려고 한국 주둔군 총사령관인 워커 장군에게 지휘를 맞기지 않고 자기 심복인 아몬드 장군에게 진두 지휘를 맡겼다고 한다. 원래 같은 전투에서 지휘권을 분산시키지 않는 것이 병법의 정석이라는데 맥아더는 한국전의 지휘권을 미8군 사령관 워커 장군과 심복인 10군단장 아몬드 장군 두 사람으로 나누었다고 한다. 한국전의 전공을 주로 자기에게 돌리려는 의도였다는 것이다. 또 인천 상륙 이후에는 낙동강으로부터 퇴각하는 북한군부터 차단하고 섬멸하는 것이 정석인데 북한군의 주력 부대를 퇴각하도록 나두고 대신 서울 탈환에 시간을 많이 썼다고 한다. 이것도 언론을 의식한 작전이라는 것이다. 서울 탈환의 상징성 때문이다.

저자는 맥아더의 심복인 아몬드 군단장에 대해서도 아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별로 능력이 없는 사람인데 맥아더의 비서실장으로서 절대적인 충성심을 보여 그 덕에 요직도 차지하고 진급도 한 사람인데 부하들에게는 아주 거만하고 전선의 상황이나 부하들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 맥아더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쓴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아몬드는 또 심한 인종차별주의자여서 은퇴한 뒤에도 흑인들은 백인들과 격리시켜 군복무를 시켜야 한다는 캠페인을 벌였다고 한다. 물론 당시 미군은 대체로 거의 모두 동양인들을 국 (Gook) 이라고 부르며 무시하는 인종차별적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전쟁 초기에 당한 이유에 북한군을 무시한 이유도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미 8군 사령관 워커 장군 (Walton Harris Walker 1889-1950) 에 대해서는 동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위스키를 좋아해서 별명이 “자니 워커” 인 그는 처음부터 맥아더의 신임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자기가 제일 신임하지 않던 장군에 전력이 제일 약한 부대를 개전 이후 처음 한국으로 보낸 이유는 북한군을 과소평가한 이유도 있다고 한다. 전쟁 초반에는 연패를 해서 낙동강까지 밀려났지만 낙동강 전투에서 분투하면서 부산을 방어하는데 공을 많이 세웠다고 한다. 그는 중공군의 개입 이후 패퇴하는 과정에서 지프차가 전복해 사망했는데 패전의 책임을 뒤집어 썼다는 것이다.

 워커의 후임인 리지웨이에 대해서는 아주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당시 미군에서 가장 유능한 장군이라고 평가받는 리지웨이가 처음부터 미8군 사령관을 맡았더라면 한국전쟁이 더 적은 희생으로 더 유리한 위치에서 끝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리지웨이의 가장 큰 장점은 당시 미군 내에 신망과 비중이 커서 맥아더의 간섭을 무시하고 독자적인 지휘를 할 수 있는 장군이라는 것이다. 만일 연합군이 중공군의 개입에 대비하면서 신중하게 북진했더라면 공군도 없고 중화기가 약한 중공군에게 그렇게 쉽게 패배하지 않았을 것이고 인해전술에 좀 밀렸더라도 한반도에서 동서 해안까지의 거리가 가장 좁은 평양 선에서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 저자를 비롯한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이라고 한다. 중공군이 개입했다는 것을 발견한 뒤에도 맥아더는 일선 지휘관들의 반복되는 경고나 호소를 무시하고 대비책을 세우지 않고 무조건 압록강까지 진격을 명령해 중공군의 매복에 걸려들었다는 것이다. 맥아더는 연합군이 압록강에 도달했다는 소식이 빨리 뉴스에 나오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고 저자는 쓰고 있다.

맥아더가 핵무기 사용을 불사하며 중국과의 전면전을 주장한 이유는 자기 생애의 마지막 전쟁을 패배 또는 무승부로 끝내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러나 중국과 전면전을 하게 되면 소련의 개입이 확실시 되고 3차 대전이 발생하게 되는 상황에서 트루만은 정치적인 부담을 무릅쓰고 미국의 영웅 맥아더를 해임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한국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때 미국이 더 많은 미군을 파병하여 중국과 더 적극적으로 싸워서 한반도에서 아예 밀어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때 맥아더의 주장대로 미국과 중국이 전면전을 벌여서 모택동을 몰아내고 장개석이 중국의 정권을 탈환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중국이 그때부터 자본주의 체제로 산업화를 시작했다면 지금 미국보다 훨씬 큰 경제 대국이 되어있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중공군을 한반도에서 아예 밀어내지 못했더라도 평양선에서 막고 휴전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도 하게 된다. 아무리 중공군의 수가 많아도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동경에 앉아 안일하게 지휘하던 맥아더 지휘부의 실책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한국전의 승자는 모택동이라고 쓰고 있다. 개전 당시 막 장개석을 몰아낸 이후 중국 내에서의 정치적 위치도 확고하지 않았고 스탈린에게도 무시 당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세계 최강의 미국을 상대로 싸워서 휴전선까지 밀고 내려가 버틴 것은 중국의 입장에서는 큰 승리였고 국제사회에서 신생 중국 공산국가의 위세를 떨친 효과를 가져온 것이라 한다. 그 이후 모택동은 중국에서 황제에 비교되는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평생 이를 한번도 닦지 않아서 이가 초록색이었던 (차를 많이 마셔서) 모택동은 황제처럼 중국 각지에서 진상하는 처녀들을 즐겼고 명분상 사회주의자이지만 사실 “인민” 의 목숨을 아주 사소하게 여겼다고 저자는 쓰고 있다. 한국전에서 살아남은 미군들은 귀국 후 별 주의도 칭찬도 받지 못하고 왜 미국이 한국에서 싸워야 했나 또는 그 수많은 목숨을 잃을 만한 가치가 있었나 라는 회의를 가지고 있던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근래에 남한이 러시아를 능가할 만한 경제력을 가진 나라가 되자 그에 대해 보람을 느끼는 참전 용사도 있다고 쓰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이 “가장 추운 겨울” 인 이유는 당시 연합군에게 중공군보다 무서웠던 것이 피할 수 없는 추위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종전 후 30년 만에 참전 군인 둘 이 처음 만났는데 인사말이 “이제 몸이 다 녹았는가?” 이었다고 한다. 한국이 아주 추운 나라라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을 가끔 만나는데 한국전쟁의 기억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하긴 뉴욕 (위도 40도) 이 서울 (위도 37도) 보다 북쪽에 있는데도 서울의 겨울이 뉴욕의 겨울에 비해 더 춥게 기억되는 것은 사실이다. 인터넷을 뒤져 봤더니 서울의 겨울 평균 기온은 영하 5도 이고 뉴욕시는 영상 1도가 좀 안된다고 한다.

이 책을 쓰고 난 후 며칠 안돼 저자는 다음 책을 준비하려고 사람들을 인터뷰하러 다니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한다.

Posted by kr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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