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2018.05.18 12:29

Central Park 2


센트럴 파크는 마차 타고 돌아다니는 방법도 있고 자전거 타고 돌아 다니는 방법도 있는데 제일 좋은 방법은 걷는 것이다. 마차는 비싸고 말똥 냄새도 나고 가는 길이 제한 되어 있다. 자전거도 도로가 제한 되어 있다 (재미있는 구석을 들여다 보는데 오히려 짐이 된다) . 그렇지만 시간이 제한된 관광객의 입장에서 센트럴파크를 걸어서 한바퀴 다 돌만큼 볼 것이 많지는 않으니 자전거를 타고 한바퀴 돌아 보는 것도 그리 나쁜 생각은 아니다. 파크 남쪽 6 ave 에 Citi Bike 빌려 주는 데가 있는데 30분 이상 타면 비싸진다고 한다. 그 주변에 자전거 빌려주겠다고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들이 즐비한데 빌릴까 하다가 그냥 가면 더 깎아 준다고 한다. 실제로 빌려 본 적은 없다. 경치 좋은 곳 몇 군데를 꼽자면 The Loeb Boathouse (너무 덥지 않을 때 여기서 보트를 빌려 타는 것도 괜찮다), Belverdere Castle (2018 5월 12일엔 공사 중이었다), Bethesda Fountain 등이 있다. 


Bethesda Fountain (아래) 은 Central park 의 중심이라고 부르는데 지도를 보면 센트럴파크 남반부의 중심에 있다. Bethesda 라는 이름은 성경에 나오는 고대 예루살렘의 로마식 목욕탕/수영장 Bethesda Pool 에서 따온 것이다. 천사가 이곳의 물을 휘저을 때 들어가는 첫번째 사람의 병이 낫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주변에 앉아 기다렸다는 곳이다. 아래 사진의 천사가 바로 그 천사를 나타낸다. 그렇다고 이 분수에서 병을 낫게 해달라고 비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대신 이 분수의 북쪽에 뉴욕시 상수원으로 쓰이던 저수지가 센트럴파크 중간 쯤에 있는데 그 덕에 뉴욕 시민들이 전염병에 걸리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 분수의 물은 거기서 끌어다 쓰는 것이라고 하니 전혀 연관이 없다고 하기는 어렵겠다.



아래 사진은 그 분수 바로 옆 Bethesda Terrace 이다. 사진을 찍고 있는 신부가 왼쪽에는 길거리 성악가가 노래를 하고 있다. 

파크 중간 쯤 (79 street) 에 서쪽으로는 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가 있고 동쪽으로는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가 있다. 메트로 뮤지엄은 세계 10 대 박물관을 꼽으라면 꼭 들어가는 데  (National Geographic Forbes 등 유명 잡지들에 따르면) 방문객 수로는 세계 세번째 박물관이란다 (1위는 파리의 Louvre 이고 2위는 북경의 중국 국립 박물관이라 한다. 말 나온 김에 4위는 바티칸 5위는 대영박물관). 메트로 뮤지엄은 최근까지 사실상 “공짜” 였다.  (내고 싶은 액수를 내면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2018년 3월 이후) 성인인 경우 25불씩 내야한다. 예외가 있긴하다.  뉴욕주 면허증이 있거나 뉴욕 뉴저지 커네티컷 학생증이 있으면 예전처럼 “pay-as-you-wish” 이다. 


센트럴파크는 1853년에 만들기 시작했는데 만든 이유 중 하나가 뉴욕에도 런던의 Hyde Park 같은 공원을 만들어 주변 부동산 가격을 올리려는 것이었다. 센트럴파크의 크기(3.4km2) 는 남산 (2.9km2)보다 조금 크고 서울 숲의 세배정도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 땅을 매입하기 위해 쓴 돈이 알래스카를 구입한 가격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센트럴파크를 짓기 시작한지 10년 쯤 되었을 때 미국은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알래스카를 720만불에 샀는데 (1867년) 센트럴파크 부지 가격이 740만불이었다는 것이다. 센트럴파크를 짓기 전 그 땅에는 흑인들을 포함한 빈민들이 살고 있었고 가축을 기르기도 했었다 고 한다. 센트럴파크의 남쪽은 여러가지 인공 시설 들이 많아 더 화려하고  북쪽은 나무가 많고 더 자연스럽다.

The Loeb Boathouse 에서 보트를 빌려 타다 찍은 사진. 내 컴퓨터 배경 화면이기도 하다.


Belverdere Castle. 성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작다. 전망대이다. 아래 사진은 거기서 내려다 본 풍경 둘





맨해튼 일단 끝. (추후 보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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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rkim
여행2018.05.09 07:25

Central Park - 1

 

맨해튼에서 TV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이 Times Square 라면 영화에 제일 많이 나오는 곳은 Central Park 이다. 59 street 에서 110 street 사이 그리고 5th Ave 에서 8th Ave (Central Park West 라고도 불린다) 사이의 직사각형 모양으로 그대로 맨해튼의 중앙 공원이다. 남쪽부터 살펴보면 Central Park 남서쪽 모서리엔 Columbus Circle 있고 남동쪽 모서리엔 Plaza hotel 있다.  

 

컬럼버스 써클 중심엔 당연히 컬럼버스 동상이 있다. 1892 년에 컬럼버스의 미대륙 상륙 400 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탈리아 출신 미국인들이 주도하여 세운 것이다. 최근에 컬럼버스가 재평가 되면서 (원주민들에게 나쁜 짓을 많이 했다) 없애자는 여론도 있다. ( 지역 컬럼버스 동상의 부위에 빨간 페인트를 칠하기도 하도 받침대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낙서를 하는 일도 있어서 요새는 동상에 대한 경비가 심해졌다고 한다.) 유럽에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동상을 높은 위에 올려 놓았는지 의아하다. 열심히 만들어 놓고 수도 없게. 멀리서 보이라고 그런건가.

 

뉴욕서 제일 유명한 호텔인 Plaza Hotel Home Alone (2), Sleepless in Seattle, The Great Gatsby 여러 영화에 등장하기도 했다. 한때 Trump  소유한 적이 있었는데 다행히도 너무 비싸게 사서 파산하여 되팔았다. 유학생 시절이던 80 년대 후반에 플라자 호텔을 구경할 커피숍에 적이 있는데 바로 앞에Arnold Schwarzenegger 그의 부인이었던Maria Shriver 커피숍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있었다.  누구는 브라운에 가고 누구는 하바드에 가고 그런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케네디 가문 아이들 대학 입학 이야기를 하는 같았다. 조금 있다가 호텔 매니저가 나타나 두사람을 커피숍 안으로 데리고 가버렸는데 아무도 사인을 받거나 사진을 찍자 거나 하는 사람은 없어서 속으로 뉴요커들은 자존심이 강한가보다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유명해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플라자 호텔 맞은편 (센트럴 파크의 모서리) 에는 남북 전쟁 영웅인 Sherman 장군의 금빛 동상이 승리의 여신과 함께 있다. 남부군에게 무자비했던 장군으로 유명한데 파죽지세로 남부의 도시들을 점령하여 북부가 승리하는데 공을 세웠다. 2 세계대전 가장 많이 쓰였던 미제 탱크를 그의 이름을 붙여 셔먼 탱크라고 부른다. 남북 전쟁이나 셔먼 장군이나 왠지 황금빛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셔먼 동상에서 블록 떨어진 (6th Ave 에서 Central park 들어가는 입구) Jose de San Martin 장군의 기마상이 있다. 사람은 아르헨티나의 조지 워싱턴이라고 불리는 사람으로서 스페인으로 부터의 독립 전쟁을 이끈 장군이다. 미국은 아르헨티나에 조지 워싱턴 동상을 보내고 아르헨티나는 미국에 동상을 보냈다고 한다. 동상 바로 뒤엔 스페인 제국에 대항한 다른 남미의 영웅 Simon Bolivar 동상이 있다. 볼리비아는 사람의 이름 만든 국명을 만들었다고 한다. 동상들을 지나 파크 안으로 들어가다 보면 또다른 호세의 동상이 나온다. 쿠바 독립 (스페인으로 부터) 영웅 Jose Julian Marti 기마상이다. 동상들이 있는 곳은  6th Ave Central Park 만나는 지점인데 6th Ave Avenue of Americas 라고도 부르는 이유는  북미와 중남미의 연대를 기리자는 의미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중후반부터 미국과 중남미와 관계는  아주 좋다고 하기 어렵다. 중남미 사람들에게 이제 미국은 자신들을 억압하던 스페인 제국과 비슷한 이미지로 느껴지는 지도 모른다


센트럴 파크가 시작하는 남쪽 풍경을 종합해 보자면 남미에 스페인 제국의 식민지를 시작한 Columbus 동상을 서쪽에 세우고 그 스페인 제국으로부터 벗어나는데 공을 세운 사람들의 동상 셋을 동쪽에 세운 셈이다.  Central Park 남동쪽에 모서리에 동상이 하나 있는데 이것도 중남미 독립과 연관되어 있다. 19세기 쿠바독립 전쟁 당시  미국 군함이 쿠바 해안에서 폭발하여 배에 타고 있는 260 명이 사망한 것을 추모하기 위한 조형물이다. (USS Maine Monument) 수백명의 해군이 사망한 것을 추모하는 형상물이 엉뚱하게도 세마리의 말 (해군이기 때문에 해마를 상징) 을 타고 있는 여신상 같아 보인다. 이 동상은 미국을 상징하는 여성 캐릭터인 콜럼비아를 의미한다고 한다. 미국의 수도가 District of Columbia 인 것도 영화사 이름이나 대학의 컬럼비아인 이유도 여기서 유래한다. 그런데 요샌 미국을 상징하는 남자 캐릭터인 Uncle Sam 에 밀려서 사람들이 잘 모른다고 한다. 



한편 USS Maine 함정이 침몰한 원인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확실히 밝혀 지지 않았다. 스페인이 그랬다는 설 때문에 미국과 스페인의 전면전의 계기가 되었는데 사실은 화약고의 화재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전쟁의 명분을 얻기 위해 일부러 그랬다는 음모론도 있다. 어쨌든 이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필리핀과 Puerto Rico 를 차지하면서 강대국으로 인정을 받게되고 스페인은 남미 대륙에서 완전히 물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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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rkim
여행2018.05.06 11:23

Times Square

 

뉴욕서 가장 TV 자주 나오는 곳이 타임스퀘어이다. 서울서 보신각 타종 하듯이 해가 바뀔 마다 Ball-drop 행사를 하는 장소이고 수많은 광고 브로드웨이 극장 간판들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면서 뉴욕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이다타임스퀘어는 브로드웨이와 7th Ave 자로 만나는 지점 (45 street) 중심으로 42 street 과 47 street 사이의 8 지역 지칭한다. (삼각형 두개가 꼭지점에서 만나는 8자형이다. 나비 넥타이 모양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광장의 남쪽 끝부분에 있는 건물 (One Times Square) New York Times 신문사 사옥이었기 때문에  Times Square 라고 불린다. 근데 뉴욕타임스 신문사는 건물에서 이사를 나갔고 건물은 주로 광고판을 붙이는 사용한다. 아래층을 뻬고는 거의 비어 있다고 한다.

맥주 사진이 보이는 건물이 Ball Drop 하는 Times Square 남쪽 끝 건물 (One Times Square). 

다른 시기에 찍은 같은 건물 사진


타임스퀘어의 북부 반쪽을 Duffy Square (또는 Father Duffy Square) 라고 부르기도 한다. 카톨릭 신부였던 Duffy 는 1차 대전 때 군목으로 참전하여 공을 많이 세워서 신부로서 가장 많은 훈장을 받았다고 한다. 전쟁터에서 부상자를 구해내는 일 뿐 아니라 실제 전투에서도 공을 많이 세우고 뛰어난 리더쉽을 발휘하여 연대장으로 임명될 뻔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Duffy 신부의 동상 뒤에는 브로드웨이 쇼 티켓을 싸게 파는 TKTS 건물이 있는데 이 건물의 지붕은 계단식 관중석처럼 되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 타임스퀘어의 전경을 내려다 보는 명소가 되어있다. 

Times Square 북쪽 끝. 가운데 검은 색 동상이 Father Duffy 동상이고 그 뒤가 TKTS 빌딩 위에 앉아있는 사람들





 

내가 처음 뉴욕에 왔을 (1986) 만 해도 타임스퀘어 주변은 지저분하고 위험한 지역이었다.  포르노 극장과 포르노 잡지와 비디오를 파는 가게 그리고 핍쇼를 하는 가게들이 줄을 지어 있었다. 핍쇼란 동전을 넣으면 열리는 조그만 구멍을 통해 나체쇼를 보는 것이다. 19 세기에도 이곳은 홍등가로 유명했다고 한다. 당시에 내가 Times Square 쪽으로 구경 간다고 하자 5 짜리를 뒷주머니에 넣고 가라고 조언을 주는 사람도 있었다. 노상 강도들이 많은데 빨리 5 짜리를 건네 주면 그냥 보내준다는 것이다. 물론 좀 과장된 경고였겠지만 베트맨 영화에 나오는 어둡고  위험한 Gotham City 거리의 장면들이 바로 당시 42 주변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의 타임스퀘어는 안전하다. 밤에도 주말엔 관광객들이 가득차 있어 걸어가기 힘들 정도이다. 노상 강도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테러리스트는 모르겠지만.

 



 타임스퀘어 빌딩 (One Time Square) 보면 연상되는 건물이 다리미” (Flatiron)빌딩 이다. Flatiron  빌딩도 맨해튼을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브로드웨이와 5th Ave 23 street 에서 X 자로 만나 생긴 삼각형 공간에 치즈 케잌 조각처럼 만든 건물로서 뉴욕서 가장 사진이 많이 찍히는 건물이다. 타임스퀘어 빌딩은 그러나 완전한 삼각형은 아니고 뾰족한 모서리가 잘려 나간 사다리 꼴이다. Flatiron 빌딩도 광고판을 단적이 있는데 주변 거주자들이 반대해 철거했다고 한다.

By Imelenchon (original work) - This is a retouched picture, which means that it has been digitally altered from its original version. Modifications: cropped. The original can be viewed here: Edificio Fuller (Flatiron) en 2010 desde el Empire State.jpg. Modifications made by Beyond My Ken.,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2762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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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rkim
여행2018.04.27 08:16

그리니치 빌리지 바로 14 street 부터 Central Park 시작하는 59 street 까지 Midtown 이라 부른다.  (34 street 북쪽부터 미드타운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지역에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는 Times Square, Rockefeller Center, Empire State Building, Chelsea, Koreatown 등이 있다. 남쪽부터 시작해서 15 서쪽 (9th Ave) Chelsea Market 원래는 과자 만드는 공장이었는데 (NABISCO) 지금은 관광지가 되었다. 특별히 있는 것은 아니고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건물에 식당, 빵집 옷가게 등이 . Highline Park (고가도로 공원)  올라가는 입구도 바로 붙어 있다. 2018 년에 구글이 첼시마켓 빌딩을 24 억달러에 샀다는데 단일 빌딩으로 뉴욕서 가장 비싸게 거래된 건물이라 한다. Empire State Building 보다 비싼 가격이라던데 별볼일 없어 보이는 건물이 그렇게 비싼 몰랐다. 재개발 하려고 그러는지.

 

Chelsea market 은 여러번 갔는데 쓸만한 사진이 없다.


Broadway 5th Ave 사이의 32 가를 Koreatown 이라고 한다. 주말에 가면 한국식 빵집 (뚜레쥬르) 앉을 자리가 없고 갈비집  같은 식당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쉽게 있다. 이상이 한국 사람이 아니다. 코리아타운이 시작된 것은 70년대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80 중반만 해도 32 가가 그렇게 인기가 있지 않았고 한국 식당에 가려면 36 가로 가곤 했던 기억이 있다. 80년대 뉴욕에선 일식 (스시) 먹는 것이 유행이었고 일제 가전 제품 (SONY) 가장 인기 있었는데 요샌 한국 전자 제품이 가장 인기가 있고 한국 음식이 유행이다. 아들도 맵다고 먹는 떡볶이를 아들 룸메이트 (백인) 너무 좋아해 배달을 시켜 먹는다고 한다. 맨해튼에선 떡볶이 배달도 되는 모양이다. 미국에 180만명의 한인이 있다는데 21만명 정도가 뉴욕-뉴저지 지역에 있다. (불법 체류자를 포함하면 많을 것이다.)

 

코리아타운 바로 (두블럭) Empire State Building 있다. 1931 년에 지어진 빌딩은 이후 40 가까이 세계 최고 빌딩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었다. 90년이 되어가는 빌딩의 102 전망대는 9.11 자리에 새로 지은 Freedom Tower 전망대보다 생각에  훨씬 낫다. Freedom Tower 전망대는 유리로 막혀 있는 데다 유리는 대부분 지문으로 얼룩져 있고 롯데 타워 처럼 발코니같은 옥외 지역도 없다.  엠파이어 빌딩 전망대는 옥외여서 답답하지 않고 사진 찍기도 훨씬 좋다. 아래 사진은 구형 모델 스마트 폰으로 찍은 것인 데도 자유의 여신상까지 보인다. 사실 Freedom Tower 전망대 내부는 롯데 타워 전망대 보다도 못하다 (물론 경치는 맨해튼이 낫다.  서울은 아파트 옥상 초록색 방수 페인트가 너무 많이 보인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바라 본 Lower Manhattan (Freedom Tower)


Freedom Tower 에서 바라본 Midtown. Empire State Bldg 이 어령픗이 보인다. 위에 사진은 Note 4 로 찍었고 이 사진은 Note 8 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리창 때문인지 ...


강건너에서 본 Empire State Bldg



Rockefeller (John D. Rockefeller Sr) 미국 역사상 최고 부자로 여겨지는 사람이다. 요새 가치로 환산하면 게이츠보다 세네배  더 부자였다는 것이다. Rockefeller Center 그의 아들 주니어” (John D. Rockefeller Jr) 지은 것이다. 록펠러 센터는 일본 경제가 아주 잘나가던 80년대에 미츠비시가 샀다가 크게 손해보고 되팔았고 지금은 록펠러 가문과 관련이 없다고 한다. 록펠러 센터는 48 street 부터 51 street 사이와 5 th Ave 6th Ave사이의 3 블록에 있는 19 건물 콤플렉스를 가리키는데 여기서 가장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곳은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프로메테우스의 황금빛 조각상과 앞에 겨울이면 열리는 스케이트장 그리고 뒤에 (NBC 방송국 본부가 있는 30 Rockefeller Plaza 앞에) 세워지는 크리스마스 트리이다. 그곳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처음 세운 사람들은 록펠러 센터를 짓는 공사장 인부들이었다고 한다. 누가 시켜서 세운 것이 아니라 대공황 시기에 일자리를 갖게 것이 좋고 고마워 자발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나눠주는 월급 봉투를 받으면서 깡통이나 종이 등으로 트리 장식을 했다고 한다.

 

 

오른쪽에 보이는 여자 동상은 뒤에 보이는 황금빛 프로메테우스가 진흙으로 빚어 만든 최초의 인간이다. (사진에는 안 보이지만 왼쪽에 남자 동상도 있다) 록펠러 센터의 동상들이 반 기독교적 인본주의 (다빈치코드 식) 를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음식 맛은 별로이지만 스케이트 장이 보이는 식당.

여름엔 스케이트 장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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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rkim
여행2018.04.21 08:34


맨해튼은 대체로 거리가 바둑판 모양이지만 스트리트나 차이나타운등을 포함한 남쪽은 구시가지였기 때문에 복잡하다. 바둑판 거리를 계획하기 시작한 것은 맨해튼 정착이 시작한지 180년쯤 지난 1811 년이었다고 한다. 바둑판 거리는 리틀 이탤리에서 5분도 걸리는 Houston street 북쪽부터 시작한다. `거기서부터 북쪽으로 1st Street 부터 거의 맨하탄 북단 (193 street) 까지 올라가고 (원래 계획에는 155 street 까지만 계획 했다고 한다) 동쪽부터 서쪽으로는 1st Avenue 부터 11th Avenue 까지 간다. 그런데 1 가와 14 사이의 서쪽 부분은 예외이다. 당시에 지역이 뉴욕시의 일부가 아닌 시골 마을이라 개발에서 제외 되었다고 한다. 지역이 Greenwich Village 이다.

 

Greenwich 라는 말은 네덜란드 말로 마을 green district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린위치 빌리지 하면 떠오르는 말들은 가난한 예술가, 동성연애, 보헤미안 (전통적 문화에 반발하는 자유로운 영혼을 의미 하는), 워싱턴 광장 등이 있다. 헨리의 단편 소설 '마지막 잎새' 라는 소설에 가난한 화가가 페렴으로 죽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배경이 그리니치 빌리지이다. 지금은 물론 땅값이 올라서 (Gentrification) 가난한 예술가들이 살기는 어렵다. 동네는 동성 연애자들의 인권운동이 시작된 곳이다. 1968년에 Stonewall Inn이라는 술집에서  단속 나온 경찰들과  동성연애자들 사이에 충돌이 있었고 사건이 동성연애자 인권 운동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당시엔 동성 연애자들이 술집에서 같이 춤추고 교제하는 것이 불법이었다.

 

빌리지에서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워싱턴 광장이다. 날씨 좋은 주말엔 워싱턴 광장은 놀이 공원 같은 분위기 이지만 한때 (18 세기 ) 공동 묘지였고 전에는 흑인들의 농지였다. 맨해튼 남부에 몰려 살던 유럽 정착자들이 북쪽 원주민 (인디언) 들의 침략을 막을 노예 출신 흑인들에게 땅을 주어 경작하게 것이다. 광장의 상징인 Washing Square Arch 조지 워싱턴 대통령 취임 100 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파리의 개선문을 만든 것인데 크기는 반도 안된다. 우리나라의 독립문도 비슷한 시기에 개선문을 만들었는 Washing Square Arch 보다 10m 정도 작다. (독립문 1894, 14.2m; 워싱턴 광장 아치 1892, 23m; 파리의 개선문 1806, 50m). 워싱턴 광장은 공공 시설이지만 NYU 건물들에 둘러 쌓여 있어 캠퍼스의 역활도 한다. NYU 는 원래 중하층 학생들을 위해 만든 학교이다. 당시 아이비 리그 대학 등에 주로 상류층/특권층 학생들이 다녔기 때문에 교육 민주화 명분으로 만든 학교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서 가장 비싼 학교 중 하나가 되었다. 

 


빌리지 바로 남쪽엔 소호 (Houston Street 남쪽이라는 뜻이다) 있는데 이곳도 예술가가 몰려 살던 곳이다. 이곳은80 중반까지도 화실이 많이 있었다. NYU 에서 대학원 다닐  같은 과 친구들과 소호를 지나가다가 백남준씨를 만나 사인을 받은 적도 있다. 더러워진 흰색 와이셔츠를 반쯤 혁대 밖으로 내놓고 걸어가던 사람에게 사인을 받자 같은 친구들이 거지에게 사인을 받느냐고 물어 보았었다.  이곳도 이젠 화실 대신 유명 브랜드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빌리지처럼 가볼만한 예쁜 카페나 오래된 빵집, 레스토랑들도 많이 있다.

 

 


Posted by krkim
여행2018.04.08 09:03


네덜란드인들은 맨해튼을 원주민들로부터 24 주고  샀다는데 그로부터 50 후에 1664 영국인들은 힘으로 뺏았었다. (맨해튼을 24 주고 샀다는 이야기엔 여러가지 이견이 있긴 하다. 판게 아니라 빌려준 것이라든지 현재 가격으로 환산하면 24불보다 훨씬 많은 액수라든지 하는 애기들이다.)  그렇다고 네덜란드 인들과 영국인들이 피를 흘리며 싸운 것도 아니고 뉴욕의 네덜란드 인들은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네덜란드 후손 뉴욕커 들은 초기 정착자의 이점과 기득권으로 대접을 받고 살았다.

 

맨해튼에서 역사적으로 제일 흥미로운 건물이 Federal Hall 것이다. 뉴욕 증권 거래소 (New York Stock Exchange) 바로 옆에 위치한 건물에 봤더니 커다란 현수막에 첫번째 수도, 첫번째 대통령, 첫번째 의회라고 쓰여 있다. 이곳이 미국의 첫번쨰 국회 의사당이었고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 취임식을 가졌던 곳이라는 뜻이다. 현재 있는 건물은 사실 19세기 중반에 재건축된 건물이니 실제로 초대 대통령이 취임식을 가졌던 곳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신전처럼 지은 이유는 그리스 시대의 민주주의와 로마시대의 공화정을 지향하는 의미라고 한다. 백악관이나 제퍼슨 기념관 수도 워싱턴 디씨의 건물들도 로마시대 양식으로 지은 것을 보면 미국 사람들에게 고대 로마 제국은 모델 국가였던 모양이다. 하긴 따지고 보면 모든 서양국가에게 망한 1500년이나 되는 로마 제국은 되고 싶은 나라였는지 모른다



Federal Hall 바로 길에 나무 기둥이 박혔던 흔적들이 줄지어 남아있다. Wall Street 이름이 유래한 나무로 만든 방어벽 (palisades) 흔적인 것이다. Federal Hall 벽이 있었던 자리의 바깥쪽 (북쪽) 있고 뉴욕 증권거래소는 안쪽 (남쪽) 있다



비둘기 바로 아래 사각형이 월스트리트 방어벽의 기둥이 박혀있던 흔적이다. 그 흔적이 멀리 보이는 Trinity Church 쪽으로 계속 이어진다. 




월스트릿에서 북쪽으로 20 가량 걸어가면 Canal Street 중심으로 차이나 타운이 나온다. Canal street 도시의 폐수가 고여 있던 연못의 물을 빼내기 위해 만들어진 수로 (canal) 있었던 자리를 복개하여 만들어진 거리이다. 당시에 악취 등의 문제로 저소득층이 살던 지역이고 차별 받던 중국 이민자들이 19 세기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당시 중국 이민자들은 여러가지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당시 미국은 노동력 충원을 위해 중국 사람들의 이민을 받아들였는데 중국인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여자들은 받아들이지 않아서 여성 비율이 100 명당 1명도 안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시민권을 가진 미국 여성이 중국 남자와 결혼하면 미국 시민권을 박탈하기도 했다. 가끔 아이리쉬 여자들과 결혼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아일랜드 이민자들도 당시엔 흑인들과 동급으로 차별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지금 차이나 타운은 관광 명소가 되었고 새로운 중국 이민자들이 자리 잡기엔 너무 비싸 졌다. 차이나 타운 바로 (북쪽) Little Italy 있다. 19세기엔 이탤리언들도 차별받는 이민자 그룹이었고 가난한 동네에 자기들끼리 몰려 살았다. 남부 이태리 출신 사람들은 백인의 범주에 넣어 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한때 마피아의 근거지이기도 했고 대부 같은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Little Italy 라는 커다란 간판을 빼고 별로 볼 것은 없다.

 


Posted by krkim
여행2018.03.23 09:45

미국 역사 기행 – 뉴욕시 -1


뉴욕시 문장



제임스타운에 영국인들이 정착한지 2년 뒤인 1609 년에 네덜란드에서 보낸 헨리 허드슨이 뉴욕에 도착했다. 그는 아시아로 갈 수 있는 뱃길을 찾아 보려고 맨하튼 섬 서쪽에 있는 강을 따라 올라가 봤지만 인도나 중국으로 가는 길은 물론 발견하지 못했다. 대신 강에 비버가 아주 많이 산다는 것을 발견했다. 후에 헨리 허드슨은 선원들이 반란 때문에 목숨을 잃었지만 이름을 남겼다. 맨하튼과 뉴저지 사이를 흐르는 강을 허드슨 강이라 부르는 것이다. 허드슨이 발견한 비버의 털가죽은 유럽에서 모자와 코트의 재료로 아주 인기가 많았고 네덜란드 사람들이 맨하탄에 정착하게 되는 주요 경제적 동기가 되었다. 비버는 뉴욕시를 상징하는 문장에 들어있고 뉴욕 주를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뉴욕시 문장에는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풍차와 엣날 네덜란드 사람들이 즐겨입던 Knickerbocker 바지도 보인다. 뉴욕 농구팀 이름 (Knicks) 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헨리 허드슨이 다녀간지 15년쯤 (1624) 네덜란드 인들이 맨해튼 남단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뉴욕의 원래 이름은 암스텔담이다.  제임스타운에서도 그러했듯이 정착 초기에 방어를 위해 요새를 지었다. 맨해튼 남단에 Battery park 있는데 요새를 방어하던 대포들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그러니 배터리 파크는 뉴욕시가 시작된 곳이라 있다. 네덜란드인 들이 사는 지역이 커지면서 맨해튼 남단을 가로 지르는 담을 쌓아 원주민과 영국인들의 공격에 대비했는데 자리에 생긴 이름이 Wall street 이다.




(계속)


Posted by krkim
책 - 일반2018.03.23 09:28

 

부시의 비극



내가 스스로 진보라고 생각하고 보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된 계기 주요 이유가 미국 대통령 부시이다.   부시의 비극 (The Bush Tragedy by Jacob Weisberg) 이라는 책은 제목만 봐도 부시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쓴 책 임을 알 수 있다.  하긴 요새 부시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쓴 책을 찾기도 어렵긴 할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부시의 비극인 이유는 부시를 셰익스피어 비극에 나오는 왕자에 비교했기 때문이다.   부시는 마흔이 넘을 때까지 아버지의 그늘에서 자라면서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싶어했고 대통령이 되자 자기는 아버지와 다르다는 것 즉 아버지 덕에 대통령이 된 아버지의 아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다고 저자는 서술한다.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게 된 이유 중 하나가 결국 그런 동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시의 실책으로 미국이 이라크 수렁에 빠진 것은 부시 자신의 역사적 평가는 물론이고 아버지 부시의 업적과 부시 가문의 평가도 함께 쓰레기 통에 빠뜨리는 결과를 가져왔고 결국 미 제국이 세계의 지도자로서의 위치를  잃어버리고 내리막 길로 들어서게 한 계기까지 될 것이라고 쓰고 있다.


아버지 부시는 아들 부시의 임기가 실패로 끝나가는 것을 깨달으면서 공식 석상에서 울기도 했다고 한다.  “아빠” 부시와 “엄마” 부시는 사실 장남,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은 고사하고 정치를 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들 부시는 나이 마흔 가까이 될 때까지 제대로 된 직장을 커녕 술만 먹던 집안의 말썽 꾸러기였던 것이다.  어머니 바바라 부시의 친구가 집에 놀러 왔을 때 할머니가 다 된 엄마의 친구에게 요새 성생활이 어떠냐고 물어서 어머니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그래서 부시가 정치를 하겠다고 나섰을 때 어머니 바바라 부시는 말렸다고 한다.   둘째 아들 젭 부시가 어버지를 이어 정치가가 될 것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괜히 능력도 없는 아들 조지 부시가 나서서 둘째 아들의 앞길을 막을까 염려했다는 것이다.  조지 W부시의 동생 젭은 형보다 키도 크고 똑똑해서 부모의 총애를 받고 있었고 그 때문에 조지 W 부시가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다고 한다.   장남 조지 W 부시의 역사는 집안에서 힘을 써서 좋은 학교에 들여보내 주고 직장을 잡아주고 사업을 시작 하도록 도와주면 그때마다 실패하는 것이었다고 저자는 쓰고 있다.   사실 아들 부시가 대통령이 된 것도 부시 가문의 후광에 힘입은 것이었는데 결국은 실패로 끝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부시는 거만한 사람이라고 한다.  부시의 거만함은 주로 그가 부시 가문의 장자라는데서 온다.  부시는 물론 자기 아버지가 41대 대통령이기도 하지만 할아버지도 상원 의원을 지낸 사람이고 부시의 할머니는 워커 Walker 가문의 여자인데 (그래서 조지 Walker  부시) 이 워커 집안이 한때는 부시 집안보다 훨씬 돈도 많고 더 잘나가는 집안이었다고 한다.  메인 주에 있는 부시 집안의 여름 휴양지는 원래 워커 집안의 별장이었다.   부시의 거만함을 타고난 특권 의식sense of entitlement 이라고도 표현한다.   부시는 대통령에 취임하자 마자 비서실장에게 배고픈데 햄버거가 왜 안 나오느냐고 호통을 치기도 하고  (대통령의 간식을 챙기는 일은 백악관 비서실장의 일이 아니다)  부시의 브레인이라고 불리는 정치 보좌관 칼 로브에게 자기의 옷을 걸게 하기도 하면서 자기의 위치를 확인시키기도 한다고 한다.


부시의 거만함은 역설적으로 열등감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부시의 열등감은 완벽하다고 느껴졌던 아버지의 그늘과 그런 아버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에 주로 기인한다고 한다.  또 부시는 부시라는 이름에 힘입어 고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미국의 최고 학교만 골라서 다녔지만 반 엘리트 주의자가 되었는데 그런 학교에 다니면서 느꼈던 지적 열등감 때문이라고 한다.   부시의 참모들은 부시의 그런 심리를 알고 부시의 열등감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조언하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빌 클린턴은 인수인계를 하기 위해 부시를 만나 대화를 나눈 뒤 사석에서 평가하기를  “바보는 아닌데 아무것도 모르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중요한 결정을 하는데 별로 고민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버지 부시는 중요한 정책 결정을 할 때 회의를 통해 여러 사람의 찬반 의견을 듣고 고민하며 결정했는데 아들 부시는 그런 방식을 우유부단한 것이라고 받아들였고 그래서 부시는 직관적으로 신뢰하는 소수의 참모의 의견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넬슨 만델라는 부시를 비젼이 없는 지도자라고 흉본 적이 있는데 부시는 대통령이 되고 싶은 욕심은 있어도 미국이라는 나라를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가겠다는 생각은 없던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부시의 정책은 부통령 체이니와 정치 보좌관 칼 로브에 의해 크게 좌우되었다.


부통령 체이니는 스스로 대통령이 되겠다는 정치적 야심이 없지만 대통령의 권한을 입법부나 사법부에 비해 훨씬 더 크게 확대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닉슨 행정부에서 일하다가 닉슨의 하야를 지켜보면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체이니는 20 대에 하원 의원 보좌관부터 시작해서 백악관 비서실장 (포드 대통령),  하원의원 (6선), 공화당 원내총무, 국방장관 (아버지 부시) 등등을 거치면서 워싱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행정부와 입법부를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 법의 헛점이 무엇인지 등등에 통달한 사람이라고 한다.  정치적 경력이라고는 실권이 많이 없는 텍사스 주지사를 지낸 것 밖에 없고 (텍사스는 부지사가 실권이 많다고 한다) 게다가 실무에 별 관심도 없는 부시는 체이니가 유도하는 대로 따라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백악관에서 체이니의 비서실이 부시의 비서실보다 더 크다고 하고 언론에도 대통령 비서실장보다 부통령 비서실장 (스쿠터 리비) 가 더 많이 오르내렸다.   (리비는 체이니가 시킨 일로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부시가 감형을 해 주었다)


체이니는 국방장관으로 자신의 옛 직속 상관이던 럼스펠드를 천거하는데 (체이니는 럼스펠드의 비서관을 지낸 바 있다) 그는 체이니 이상으로 워싱턴의 생리에 대하여 잘 아는 사람이다.  럼스펠드의 경력은 거의 체이니와 똑같다.  백악관 비서실장 (포드), 국방장관 (포드), 하원의원 등을 역임했다.   닉슨은 럼스펠드를 “겁나는 개자식 (ruthless little bastard)” 라고 불렀을 정도로 독한 성질을 가진 사람이라고 한다.   (닉슨이 꼭 부정적인 의미로 그렇게 부른 것은 아니다)  그 독한 성질로 럼스펠드는 아버지 부시를 여러 번 못살게 굴었다고 한다.  아버지 부시의 출세길을 막으려하기도 하고 레이건 정권 때 아버지 부시와 부통령 자리를 놓고 경쟁하기도 했다.  저자에 의하면 아버지 부시는 정치인치고 점잖은 사람이라 남에 대하여 나쁜 말을 잘 하지 않는데 예외가 럼스펠드였다고 한다.


아들 부시가 아버지 부시가 가장 싫어했던 정적 럼스펠드를 국방장관에 기용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 부시의 친구들은 놀라면서 말렸다고 한다.  아버지 부시의 비서실장이었던 제임스 베이커는 아들 부시에게 너 럼스펠드가 네 아버지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하지 라고 까지 얘기했다고 한다.   아들 부시가 럼스펠드를 받아들인 것 자체도 아버지 부시와의 차별화의 일환이라는 시각도 있다.  아버지 부시의 정적이었던 럼스펠드는 결국 부시가의 몰락에 큰 역할을 담당한다.


 


체이니와 럼스펠드 그리고 네오콘이라고 불리던 신보수주의자들에게 부시는 아주 이상적인 대통령이었다.  그들이 유도하는 대로 순순히 따라가 주었기 때문이다.   네오콘들은 유대인 출신들이 주류를 이루는데 왕정이나 신정 아니면 군부 독재 체제이던 중동 국가들을 힘으로 미국식 민주주의 체제로 바꾸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중동 국가들이 친 이스라엘 겸 친 미 국가가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또 그들은 중동 산유국들을 군사력으로 제압하고 통제할 수 있으면 중동의 석유를 차지하고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한다는 1석 2조 (또는 3조) 의 소득을 얻을 수 있다는 꿈을 부시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꾸어오고 있었다.   평생 아버지 덕에 산다는 시각을 떨쳐버리려 했던 부시는 아버지 부시가 쿠웨이트 전쟁 승리 직후 이라크 대통령 후세인을 살려둔 것이 실수라는 시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후세인을 제거함으로써 자기가 아버지가 못한 일을 해냈다는 평가 즉 자기가 아버지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부시의 두뇌라고 불리던 칼 로브는 나름대로 미국에서 공화당의 영구 집권을 꿈꾸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보수 기독교 세력이 정치 세력화함으로써  그 꿈을 이루려 했다.   칼 로브 자신은 무신론자에 가까운 사람이지만 선거가 있을 때마다 보수적 기독교인들을 움직일 수 있는 이슈들 – 낙태, 동성연애 결혼, 줄기세포 연구 – 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주로 남부와 중서부에 많이 거주하는 보수 기독교 세력은 이에 대하여 열렬히 반응했고 이런 책략은 부시가 텍사스 주지사가 되고 미국 대통령에 두번이나 당선되는 데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부시도 스스로 다시 태어난 (born again) 기독교인 즉 아주 보수적인 기독교인인 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부시 집안은 원래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교파인 성공회 Episcopal Church 계통의 교회에 나가는 집안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들 부시는 어머니 부시와 신학 논쟁을 벌인 적도 있다고 한다.  아들 부시가 다시 태어나는 경험 (born again) 을 않으면 천당에 가지 못한다고 우기자 어머니가 반박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빌리 그래함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봤는데 돌아온 대답이 왜 당신들이 신의 결정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느냐는 것이었다고 한다 (사실 이 대답은 어떻게 기독교를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좀 무책임한 대답이다). 


 현재 미군은 이라크를 점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그다드의 그린 존이라고 불리는 요새 안에 갇혀있는 꼴이라고 한다.  역사적 아이러니는 이 상태가 미국 독립 전쟁 당시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의 군대라는 것은 산적 비슷한 오합지졸로서 대영제국의 정규군과는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워싱턴의 전략은 도망 다니면서 게릴라 식으로 영국군을 괴롭히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7년을 끌자 영국으로서는 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포기해 버린 것이다 (물론 프랑스라는 다른 요인이 있기도 했지만).  또 다른 역사적 비교 대상은 베트남 전쟁과 구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침공전이다.  소련은 아프카니스탄을 침공했다가 9년 동안 국력을 소비한 뒤 퇴각했는데 이는 소련이 망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 부시는 아들 부시를 구하기 위하여 럼스펠드를 국방장관 직에서 몰아내려고 애쓰기도 하고 옛 비서 실장 제임스 베이커에게 부탁해 이라크 스터디 그룹이라는 것을 만들어 이라크 문제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햇다.  내용은 이라크에서 철수하여 병력을 아프카니스탄으로 돌리고 이란과 시리아 등과 대화하여 외교적 해결을 강구하라는 것이었는데 아들 부시는 이를 무시해 버렸다. 대신 부시와 체이니는 오히려 중동에서의 확전을 꿈꾸고 있다고 한다.  이란을 폭격하려는 것이다.  며칠전 미국 공군 참모총장이 해임되었는데 공식적인 이유는 핵미사일 관리 소홀이었지만 혹시 이란의 공습에 반대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다. 

이라크 전의 실패로 미국은 세계 무대에서의 지도적 위치가 현저히 약화되었다.  국력의 소모는 둘째치고 그것보다도 정의와 인권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완전히 퇴색된 것이다.  따지고 보면 미국이 정말 정의와 인권의 나라였던 적이 있었던가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예전에 중국의 천안문 사태 등에 대하여 비판할 때 어색하지 않은 정도는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정당한 이유 없이 전쟁을 일으켜서 수십만명의 목숨을 빼앗은 나라, 대통령이 고문을 하도록 지시하는 나라, 악명 높은 관타나모 수용소와 이라크 감옥 (아부 가립) 등등 세계인들에게 불의의 나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부시는 자기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 대해서 별로 걱정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 하나님이 시켜서 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자기는 걱정이 되서 잠을 못 자는 경우도 없다고 기자에게 이야기 한 바 있다.   부시는 측근에게 애기하기를 클린턴이 퇴임 후에 강연료나 인세등으로 돈을 많이 벌었는데 자기는 그것 보다 더 많이 벌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부시의 이야기는 본인에게는 비극이 아니고 희극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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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rkim
TAG 부시
책 - 일반2018.03.23 09:16

신이라는 망상과 신의 언어

The God Delusion & The Language of God




The God Delusion 이라는 책과 The Language of God 이라는 책을 동시에 읽었다. 신이라는 망상이라는 책은 제목대로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종교를 비판하는 책이고 신의 언어라는 책은 과학자로서 종교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쓴 책이다. 


신의 언어


신의 언어를 쓴Francis Collins 라는 사람은 미국 국립 인간 유전자 지도 연구소 (National Human Genome Research Institute, NHGRI) 소장으로서 2000 년도에 백악관에서Craig Venter 라는 사람과 함께 인간 유전자 지도의 초안을 완성해 발표한 유명한 과학자이다. 그가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주 이유 중 하나는 인간에게 선악의 개념과 도덕적 규칙이 있다는 것이다. 왜 인간에게 양심이 있다는 것 남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충동이 있다는 것이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그것도 기독교의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잘 모르겠다. 아마 존재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어야 되는데 신외에는 인간이 동물들과는 달리 선악에 대한 기준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인 것 같다. 신의 존재를 지지하는 또 하나의 이유로 그는 Anthropic Principle 를 든다. 이는 지구와 우주가 인간이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다. 물리학 법칙이 조금만 달랐다거나 지구의 공전 괘도가 조금만 달랐다거나 하면 인간이 존재할 수 없었을텐데 신이 관여해서 인간이 존재할 수 있도록 우주를 디자인했다라는 논리인 것 같다. 그 밖에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그의 딸이 대학교에 다닐 때 강간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법인은 끝내 잡지 못했는데 그 고통을 신앙의 도움으로 극복했다는 것이다. 


프란시스 콜린스는 그러나 성격을 문자그대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원리주의적 기독교는 배척한다. 특히 그는 진화론을 옹호하는데 진화론을 지지하는 증거는 화석 뿐 아니라 인간과 동물의 유전자의 관계에서도 발견된다고 주장한다. 동물의 유전자와 인간의 유전자를 비교해 보면 같은 조상에서 진화해 왔음이 거의 확실시 된다는 것이다. 그는 신이 인간을 진화를 통해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콜린스는 종교가 과학을 배척하면 결국 종교가 위축된다고 주장한다. 무신론자들은 물론 이 책이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약하다고 당연히 비난하지만 보수적 기독교인들도 이 책을 그리 반기는 것만 같지는 않다. 



신이라는 망상


Oxford 대학교 교수이자 생물학자인 리차드 더킨스 (Richard Dawkins) 는 아마 현재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무신론자가 아닌가 싶다. 이기적인 유전자 (The Selfish Gene, 1976) 라는 책으로 유명해진 그가 2006년에 쓴 “신이라는 망상” (The God Delusion) 도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더킨스는 종교 경전을 문자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극단적/근본주의적 종교 뿐 아니라 아예 종교 자체를 없어져야 할 것으로 보는 입장인 것 같다. 


더킨스가 없다고 주장하는 신은 유대교와 그로부터 파생된 두 종교 즉 기독교와 이슬람교 신자들이 전통적으로 믿는 신을 말한다. 전지 전능하고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고 사람들의 기도에 응답하는 인간사에 직접 간여하는 신이다. 이런 신은 인격신으로서 사람처럼 기뻐하고 화도 내고 질투하기도 한다. 그는 이런 신이 존재한다는 주장자체가 하나의 가설인데 그 가설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또 이런 신이 존재한다는 가설을 성역으로 여기고 무조건 믿으라고 강요하지 말고 그 가설이 옳은지 공개적으로 토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선 전공이 진화론인 더킨스는 창조론이 틀렸음을 주장한다. 또 인간에게 도덕적 규범이나 이타성 같은 것도 진화론적 관점에서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는 주장한다. 그는 또 기도가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 결과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없다). 물론 그렇다고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완벽하게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신이 존재할 가능성과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반반이라는 뜻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여러가지 증거로 볼 때 신이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존재할 가능성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라고 말한다.


더킨스는 또 종교가 인간에게 해롭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전통적 종교가 사람들에게 과학과 이성을 무시하도록 가르치기 때문이다. 또 종교 경전의 문자 그대로의 해석 때문에 말도 안되는 교리 때문에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한다. 종교는 또 사람들 사이에 갈등을 증폭시키기도 한다고 한다. 종교가 없었으면 다른 민족간의 갈등이나 전쟁도 그렇게 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특히 아이들에게 어릴 때 종교적 교리를 주입시키는 것은 아동 학대라고 주장한다. 

신이 존재하는가 아닌가에 대한 문제에 대하여 누구나 다 동의할 수 있는 답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신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할 것이고 또 이제까지 그 신의 존재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씨름해 왔을텐데 그에 대해 시원한 답이 나왔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없다. 더킨스는 일단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도들이 믿는 신은 인격신으로서 세상사에 계속 간섭하고 기도를 들어주는 신이라고 규정한 뒤 그런 신이 존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라고 주장하지만 그도 신이 없다 라는 완벽한 증명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따져서 믿는것도 아니고 증거가 있어서 믿는 것도 아니고 믿고 싶어서 믿는 것이니 신이 없다고 누가 증명했다고 한들 종교를 믿던 사람이 갑자기 믿지 않게 되지도 않을 것 같다. 혈액형이 성격과 관련이 있다는 증거가 없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혈액형 성격이론을 믿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만일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면 종교는 인간에게 해롭기만 한 것일까?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종교가 인간에게 해까지는 아니더라도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교회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내고 있는가? 종교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은 먼저 중동 여자들 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운전은 왜 못하게 하나? 남자들과 함께가 아니면 외출도 못하게 해서 남자아이라도 데리고 나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머리 (또는 온몸) 를 가리고 다니는 것도 답답해 보이고. 다른 종파의 남자와 연애를 했다고 돌로 쳐 죽이기도 하고. 이런 문제가 꼭 종교 때문이 아니라 문화 때문이라고 말 할 수도 있지만 종교적 교리에 바탕을 둔 문화적 규범이기 때문에 더 융통성이 없고 바꾸기 어려운 것이 사실일 것이다. 1700 여년 된 문화 유적인 불상을 폭파시키는 것을 보면 가서 한대 주어 박고 싶은 생각이 들때도 있다. 종교가 없었으면 중동이나 인도/파키스탄 북 아일랜드등의 분쟁도 그렇게 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일부 기독교인들은 이슬람교는 “가짜” 신을 섬기는 종교이니까 그런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도 마녀 사냥, 십자군 전쟁, 과학자 화형등 필요 없이 사람들에게 피해 주는 일을 많이 했다. 사실 현대 서구 사회는 많이 세속화되어 되어 있고 정교 분리가 되어 종교 때문에 말도 안되게 피해보는 경우는 중동의 경우보다 덜하다. 그래서 현재 중동에서의 종교적 영향력을 서구 중세의 암흑시대와 비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유독 미국에서는 특히 근래에 와서 보수 기독교가 정치에 끼치는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그래서 줄기 세포 연구도 행정부에서 지원하지 않고 외교 정책 결정도 종교적 교리에 의해서 영향을 받기도 한다. 신이 세상일을 모두 주관한다는 종교인들의 믿음은 사실 지구 온난화 같은 문제에 대하여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원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적도 있다. 사실 예수의 재림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다라는 사람 중에는 지구 온난화가 그런 징조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일부 종교인들은 현세에서의 삶이나 그 삶의 현장 즉 지구는 별 의미가 없는 것이고 저 세상 (천당) 에서의 삶이 진짜 중요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태도는 당연히 현세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또 박노자씨가 얼마전에 한겨레 신문에 썼듯이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보수적으로 만드는 경향도 있다. 미국에선 심지어 다시 정교 일치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신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종교가 인간에게 나쁘기만 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종교는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크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사람들이 어릴 적 부모에게 느꼈던 느낌 (신뢰감, 안정감, 부모만 옆에 있으면 만사가 다 괜찮을 것이라는 느낌) 의 신이 자기를 뒤에서 돌봐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여러가지 경우에 심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또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를 하면 소원이 이뤄질 가능성도 조금 커질 수 있다고 본다. 꼭 신이 직접 나서서 물리/자연 법칙을 무시하고 소원을 이뤄주기 때문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이 더 열심히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일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도만 한뒤에 신만 믿고 아무일도 하지 않는다면 역효과가 나는 경우도 있겠지만.) 또 장례식을 치르는 사람들에게 신이 있고 천당이 있다는 믿음은 큰 위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지옥에 갈까봐 더 불안하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종교를 믿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들이 천당에 간다고 믿는 것 같다. 종교는 또 사람들이 자기를 낮추고 겸손한 태도를 가지게 하는 효과도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종교는 절박한 처지에 처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모진 삶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한다. 

종교에서 해악은 없애고 좋은 점만 있게 할 수는 없을까? 만일 종교에서 비롯된 해악이 종교의 원래 취지때문이 아니라 종교 교리를 오해한 종교 지도자들 때문이라면 종교인과 비 종교인 모두 만족할 수 있을만한 해법을 찾을 수도 있다고 본다. 사실 종교 경전에 대한 해석은 시대에 따라 바뀌어 왔다. 인종 차별도 옛날에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정당화 한적도 있다. 요새 성경이 인종차별을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성차별도 성경에 바탕을 두고 정당화 해 왔지만 현대에 와서는 많이 나아졌다. 그러니까 종교 교리도 시대에 따라 재해석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요새 천동설을 믿는 기독교인이 어디에 있는가? 중세의 천동설이 요새의 창조론이다. 진화론이 기독교 교리에 반대되는 것이라고 많은 기독교인들은 믿고 있고 특히 미국의 종교 지도자들은 가르치도 있다. 종교가 과학을 거부하는 이유는 종교인들이 절대적인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종교 교리가 시대에 따라 변한다고 하면 싫어하고 성경 구절이 문자대로 해석하는 것이 성격의 권위를 더 높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9.11 으로 표면화 된 국제적 갈등의 원인의 하나가 사람들의 종교적 자세이고 세계 정치 경제를 좌우하는 미국의 정치세력이 좀 비이성적인 이유도 다수 미국인들의 종교적 입장이라는 인식이 작금의 종교 개혁 운동 또는 반종교 운동의 이유라고 본다. 그래서 미국엔 스퐁주교 같은 사람이 기독교를 구출하자고 외치고 있고 한국에서는 김용옥씨가 전통적인 기독교 신관을 바꾸자고 주장한다. 또 더킨스 같은 사람이 쓴 반종교적 서적이나 다빈치 코드 같은 책이들이 베스트 셀러가 되고 있다. 내가 보기엔 종교적인 사람들과 이성적인 사람들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종교로 기종 종교가 개혁되는 것이 가장 건설적인 해법일 것 같고 나로서도 종교를 받아들이기 더 쉬운 길인것 같은데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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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의 나라
 
오랜 만에 한국을 방문하려고 비행기 표를 사면서 비즈니스 석은 얼마인가 물어보았다.  지난 번에 한국 갔다 오는 비행기의 이코노미 석에 앉아 졸다가 목 디스크에 걸려 몇 달 고생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조금 더 비싸면 살까 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4000불 가까이 차이가 나서 포기했다.   이코노미 석 가격의 세배 가까이 되는 것이다.  일등석은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한 만이천불 (천오백만원) 쯤 한다고 한다.   3등석 (이코노미) 대신 1등석이나 2등석 비행기 표를 자기 돈으로 사면서 아깝지 않다고 느낀다면 내 기준으로는 돈이 많은 사람 -- 부자이다.  
 
마침 비행기 안에서 읽은 책이 “부자들의 나라” Richistan 라는 책이다.  Wall Street Journal 기자인 프랭크 (Robert Frank) 라는 사람이 미국의 부자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하여 취재하여 쓴 책이다.  저자는 미국 내에 부자들만의 세계가 따로 존재한다고 규정하면서 먼저 부자들을 세 단계로 나눈다.  
 
“하류층” 부자는 재산이 백만불에서 천만불 정도 되는 사람으로서 평균적인80만불 (10억?) 정도되는 집에 살고 주 수입원은 월급이나 소규모 사업이다.  미국에 이런 하류 부자들이 7-8백만 가정 정도 된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을 부자들 사이에선 “진짜 부자” 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중류층 부자는 재산이 천만불에서 일억불 정도 되고 3백만불 이상 되는 집에서 살고 주 수입원은 소유하고 있는 사업체이거나 금융 재산 등이다.  미국에 이런 부자들이 약 2백만 가정이 있다고 한다.
 
상류층 부자는 1억불에서 10억불 정도의 재산을 가진 사람들로서 기업체를 가지고 있거나 가지고 있는 재산이 재산을 만드는 사람들로서 천만불이 넘는 집에서 산다고 한다.  미국에 이런 사람들이 수천명 정도 된다고 한다.
 
BMW 나 Mercedes 또는 명품 가방이나 옷 등이 잘 팔리는 이유는 하류층 부자들이나 부자가 아닌 사람들이 자기들이 부자로 보이기 싶어서 라는 것이다.  중 상류 층 부자 중에는 이렇게 대중화 된 고급 상품을 피하고 대중에게는 덜 알려져 있지만 자기들끼리는 아는 초 고가품을 선호한다고 한다.  또 하류 부자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적인 공화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아주 강한데 비해 재산을 증식해 진짜 부자기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덜한 상류 부자들 중에는 환경 문제나 사회 정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도 많다고 한다.
 
부자들은 여러 가지 시설이 있는 집에 살고 있고 또 그런 집이 여러 채 있어 집안 일을 돌보아 주는 사람들이 필수적인데 이렇게 집 관리 해 주는 사람들의 연봉이 10만불 (억대) 되는 경우도 있고 집사장 (Butler, house management) 학교도 있어서 대학 졸업 뒤 만불 (천만원) 대의 등록금을 내고 이런 학교를 다니는 사람도 많이 있다고 한다.  요리사, 청소부, 정원사 새 먹이 주는 것만 전담하는 사람 등 수십명이 넘는 인원을 여러 채의 집 관리를 위해 고용하고 있는 부자도 많다고 한다.  하인 학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부자집 아이들을 모아 놓고 재산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학교도 있고 또 부자들끼리 돈이 많아서 생기는 고민들을 서로 털어놓고 서로 상담해 주는 정기 모임도 있다고 한다.
 
***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려고 탑승 구 앞에 의자에 앉아 길게 줄지어 탑승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늘 거의 맨 나중에 비행기를 탄다.  어차피 자리는 정해진 것이고 미리 타 봤자 좁아터진 이코노미 석에 열네 시간 묶여 앉아 있어야 하는데 뭐 하러 줄까지 서가며 일찍 타려고 하는가?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이 거의 없어져서 비행기를 타려 하는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승무원이 비행기를 타려는 내 보딩 패스를 기계 안에 넣으니 빨간 불이 들어오면서 경고음이 나는 것이다.  그걸 보더니 승무원이 다른 티켓을 빼 주면서 비즈니스 클래스로 업그레이드 되셨습니다 한다. 난 멍하게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티켓을 받아 들고 혹시 맘 변할까 봐 서둘러 비행기에 올랐다.   이코노미 석 타고 한국 갈 때 20시간쯤 느껴지던 비행시간이 돌아올 땐 한 세시간 쯤으로 느껴졌다.   무엇보다 편하게 잠을 길게 잘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가지 나쁜 점도 있긴 하다.  비행기에서 거의 잠을 못 자고 내렸을 땐 그날 밤에 잠이 잘 와서 시차를 금방 극복했는데 비행기에서 잘 자고 내렸더니만 밤에 잠이 안 와서 새벽 5시인 지금도 정신이 말똥말똥 한 것이다.   이것도 부자들의 고민인가?


2009년에 쓴 글입니다. 

Posted by kr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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