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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02 십불짜리 사나이 알렉산더 해밀튼




십불짜리 사나이 - 알렉산더 해밀튼 

 

알렉산더 해밀튼  Alexander Hamilton (1755 – 1804)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사실 별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미국에 사는데 미국 역사에 대해서 좀 알아보자는 생각으로 워싱턴의 전기를 읽고 난 뒤 미국의 건국사에 관심이 생겨서 워싱턴 다음으로 유명한 미국 3 대 대통령 제퍼슨의 전기를 오디오 북으로 된 것으로 찾았는데 못 찾고 대신 찾은 것이 해밀튼의 전기였다.  마지못해 시작한 책인데 종종 그렇듯이 읽다 보니 재미가 붙은 책이다.  이 사람의 일생도 웬만한 소설보다 더 파란만장하다.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 해밀튼은 미국의 여러 건국 공신들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람들 중 하나로 꼽히는 사람이다.  미국 사람들은 워싱턴 한 사람만을 국부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제헌의회나 독립선언에 참여한 여러 사람들을 모두 국부들 (Founding Fathers) 이라고 부르는데 해밀튼은 그 중에서도 거의 다섯 손가락에 안에 드는 사람이다.   워싱턴 (1 대 대통령) , 벤자민 프랭클린, 제퍼슨 (3 대), 아담스 (2 대), 메디슨 (4 대 대통령) 과 동렬에 드는 것이다.  이들 중 벤 프랭클린은 너무 나이가 많아서 대통령이 될 수 없었고 해밀튼이 대통령이 되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꽃뱀 스캔들” 때문인 것 같다.

 

해밀튼은 출생부터 아주 드라마틱하다.  중남미에 위치한 영국령 서인도 제도 섬에 살던 해밀튼의 모친은 아주 미녀였는데 해밀튼 할머니의 강권으로 아주 젊은 나이에 아주 나이 많은 유대인과 결혼했다.  물론 돈 때문이었다.  남편의 구박이 먼저였든지 아내의 바람이 먼저였는지 모르겠지만 남편은 젊은 아내를 간통 혐의로 감옥에 가둔다.  해밀튼이 모친은 감옥에서 나오자 마자 남편을 피해 다른 섬으로 도망가서 새로운 남자를 만나 해밀튼을 낳았다.  그러나 전 남편이 끝내 법적으로 이혼을 해주지 않아 해밀튼은 결국 법적으로 사생아로 남게 되고 평생 그 꼬리표 (Bastard) 가 따라 다닌다.  게다가 해밀튼은 아버지의 친구의 아들과 너무 닮아서 사람들이 혹시 바람기가 있던 해밀튼의 모친이 자기 남편 친구와 바람을 피워 낳은 애가 해밀튼이 아닌가에 대하여 논란도 있다고 한다.

 

부모가 일찍 죽어 고아가 된 해밀튼은 가게의 점원으로 일하다 신문에 글을 투고했는데 그 글 솜씨에 감탄한 독지가들이 장학금을 대주어 뉴욕의 킹스 칼리지 (지금의 컬럼비아 대학) 로 유학을 가게된다.  대학생 때 미국 독립전쟁이 일어나자 독립 전쟁을 지지하는 글을 신문에 발표하며 참전한 해밀튼은 워싱턴의 눈에 들어 그의 당번병 겸 비서실장 역할을 수행한다.   지난 글에 썼던 라피옛이 당시 워싱턴 수하에 있었는데 비슷한 또래인 해밀튼과 아주 친한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자 해밀튼은 학교로 돌아가 공부를 마치고 변호사가 되고 뉴욕을 대표하여 제헌 의회에 참여한다.  존 아담스 (2대 대통령) 와 토마스 제퍼슨 (3대) 이 독립전쟁 당시 독립선언문을 발표한 의회의 중심 인물이었던 것처럼 해밀튼은 제임스 매디슨 (4 대 대통령) 과 함께 독립 성취 후 헌법을 만든 제헌 의회의 중심 인물이 된다.  초대 대통령에 만장 일치로 추대된 와싱턴은 자기의 비서실장 출신의 해밀튼을 초대 재무장관에 임명한다.  당시 전쟁으로 빛더미에 올라있던 미국의 행정부에서 재무부는 가장 중요하고 힘 있는 자리로서 사실상 총리 급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재무부 장관 해밀튼은 국립 은행을 설립하는 등 미국 경제체제에 커다란 발자국을 남긴다.  지금 미국의 총리 급 장관은 국무장관이다.  당시 국무 장관은 제퍼슨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당시 미 국무부는 비서를 포함해 전체 인원이 다섯명 정도였다는 것이다.

 

미국의 2인자가 된 해밀튼은 바람이 난다.  (많은 남자들은 권력을 잡으면 바람을 피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하필 꽃뱀 부부팀에 걸려 내연녀의 남편에게 협박도 받고 돈도 뺏기고 했다고 한다.  (18세기 미국에도 꽃뱀이 있는 줄은 몰랐다.)  재미있는 것은 그럼에도 당장 관계를 끊지 않았다는 것이다.   관계를 끊으려 하면 남편 (기둥서방?) 이 편지를 보내 관계를 계속할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이 남편은 나중에 해밀튼이 정말 관계를 끊고 돈 보내는 것을 중단하자 꽃뱀 아내와 이혼했다. 이 기둥 서방이 나중에 다른 사기 혐의로 감옥에 갇히자 해밀튼의 비리에 대한 정보를 이용해 감옥에서 나오려 하면서 해밀튼의 스캔달은 먼로 (5 대 대통령) 등 정적들의 손으로 넘어간다.  사실 해밀튼의 정적들은 워싱튼의 총애를 받으며 2 인자로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헤밀튼이 재무 장관 직을 이용해 부정축재를 했을 것으로 의심했다 한다.  해밀튼은 먼로들을 개인적으로 불러 자기의 치부를 공개하고 눈 감아줄 것을 부탁한다. 자기들이 생각하던 비리가 아닌 것을 깨달은 정적들은 신사적으로 그 일을 묻어둘 것을 약속하는데 나중에 결국 그 비밀은 세상에 알려진다. 

 

그 일로 재무장관 자리에서 물러나지만 그래도 정계에 대한 영향력이 남아있어 2대 3대 대통령 선거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3 대 대선 때 제퍼슨과 애론 버 (Aaron Burr, Jr. 1756 – 1836) 가 선거인단 표에서 동수를 기록해서 미 하원에서 재투표를 여러 번 한 뒤 가까스로 제퍼슨이 대통령이 되고 버는 부통령이 된다.  그런데 그렇게 되는데 해밀튼이 영향력을 행사한 모양이다.  그때부터 해밀튼에게 나쁜 감정을 갖게 된  애론 버는 후에 해밀튼이 자신에게 대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나쁘게 얘기했다고 결투를 신청한다.  해밀튼은 결투에 대하여 묘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 결투를 피하지는 않지만 결투에 임해서는 상대방을 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었다는 것이다.  애론 버는 결투를 위해 사격 연습까지 하지만 해밀튼은 자기는 상대방을 쏘지 않을 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고 만일을 대비해 유서를 준비했다고 한다.  결국 이 결투에서 해밀튼은 치명상을 입고 며칠 후 사망한다.  기가 막힌 것은 해밀튼이 죽기 3년전 해밀튼의 아들도 똑같은 이유와 상황으로 죽었다는 것이다.  장래가 촉망되고 잘 생긴 해밀튼의 아들도 결투 신청을 받는데 결투는 하되 상대방은 쏘지 않는다는 철학 때문에 죽었다고 한다.  해밀튼의 아내는 큰 아들과 남편을 모두 결투 때문에 잃은 것이다. 

 

당시 부통령이었던 애론 버는 결투에선 이겼지만 해밀튼의 살인범으로 몰려 정치 생명도 끝나고 일종의 유배 생활에 들어간다.  사망한 해밀튼은 사람들의 동정심 등으로 영웅으로 추대되고 그의 이름을 딴 해밀튼 칼리지도 생기고 컬럼비아 대학엔 그의 동상과 기념관 등이 만들어 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지폐 중 하나인 10 불 짜리 지폐 위에 초상화를 남긴다.   (그 보다 더 많이 쓰이는 1불 짜리 위엔 워싱턴이 5불 짜리 위엔 링컨이 있다.)

참고:

Alexander Hamilton
by Ron Chernow


Posted by kr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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