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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3.23 부시의 비극
책 - 일반2018.03.23 09:28

 

부시의 비극



내가 스스로 진보라고 생각하고 보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된 계기 주요 이유가 미국 대통령 부시이다.   부시의 비극 (The Bush Tragedy by Jacob Weisberg) 이라는 책은 제목만 봐도 부시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쓴 책 임을 알 수 있다.  하긴 요새 부시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쓴 책을 찾기도 어렵긴 할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부시의 비극인 이유는 부시를 셰익스피어 비극에 나오는 왕자에 비교했기 때문이다.   부시는 마흔이 넘을 때까지 아버지의 그늘에서 자라면서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싶어했고 대통령이 되자 자기는 아버지와 다르다는 것 즉 아버지 덕에 대통령이 된 아버지의 아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다고 저자는 서술한다.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게 된 이유 중 하나가 결국 그런 동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시의 실책으로 미국이 이라크 수렁에 빠진 것은 부시 자신의 역사적 평가는 물론이고 아버지 부시의 업적과 부시 가문의 평가도 함께 쓰레기 통에 빠뜨리는 결과를 가져왔고 결국 미 제국이 세계의 지도자로서의 위치를  잃어버리고 내리막 길로 들어서게 한 계기까지 될 것이라고 쓰고 있다.


아버지 부시는 아들 부시의 임기가 실패로 끝나가는 것을 깨달으면서 공식 석상에서 울기도 했다고 한다.  “아빠” 부시와 “엄마” 부시는 사실 장남,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은 고사하고 정치를 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들 부시는 나이 마흔 가까이 될 때까지 제대로 된 직장을 커녕 술만 먹던 집안의 말썽 꾸러기였던 것이다.  어머니 바바라 부시의 친구가 집에 놀러 왔을 때 할머니가 다 된 엄마의 친구에게 요새 성생활이 어떠냐고 물어서 어머니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그래서 부시가 정치를 하겠다고 나섰을 때 어머니 바바라 부시는 말렸다고 한다.   둘째 아들 젭 부시가 어버지를 이어 정치가가 될 것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괜히 능력도 없는 아들 조지 부시가 나서서 둘째 아들의 앞길을 막을까 염려했다는 것이다.  조지 W부시의 동생 젭은 형보다 키도 크고 똑똑해서 부모의 총애를 받고 있었고 그 때문에 조지 W 부시가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다고 한다.   장남 조지 W 부시의 역사는 집안에서 힘을 써서 좋은 학교에 들여보내 주고 직장을 잡아주고 사업을 시작 하도록 도와주면 그때마다 실패하는 것이었다고 저자는 쓰고 있다.   사실 아들 부시가 대통령이 된 것도 부시 가문의 후광에 힘입은 것이었는데 결국은 실패로 끝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부시는 거만한 사람이라고 한다.  부시의 거만함은 주로 그가 부시 가문의 장자라는데서 온다.  부시는 물론 자기 아버지가 41대 대통령이기도 하지만 할아버지도 상원 의원을 지낸 사람이고 부시의 할머니는 워커 Walker 가문의 여자인데 (그래서 조지 Walker  부시) 이 워커 집안이 한때는 부시 집안보다 훨씬 돈도 많고 더 잘나가는 집안이었다고 한다.  메인 주에 있는 부시 집안의 여름 휴양지는 원래 워커 집안의 별장이었다.   부시의 거만함을 타고난 특권 의식sense of entitlement 이라고도 표현한다.   부시는 대통령에 취임하자 마자 비서실장에게 배고픈데 햄버거가 왜 안 나오느냐고 호통을 치기도 하고  (대통령의 간식을 챙기는 일은 백악관 비서실장의 일이 아니다)  부시의 브레인이라고 불리는 정치 보좌관 칼 로브에게 자기의 옷을 걸게 하기도 하면서 자기의 위치를 확인시키기도 한다고 한다.


부시의 거만함은 역설적으로 열등감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부시의 열등감은 완벽하다고 느껴졌던 아버지의 그늘과 그런 아버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에 주로 기인한다고 한다.  또 부시는 부시라는 이름에 힘입어 고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미국의 최고 학교만 골라서 다녔지만 반 엘리트 주의자가 되었는데 그런 학교에 다니면서 느꼈던 지적 열등감 때문이라고 한다.   부시의 참모들은 부시의 그런 심리를 알고 부시의 열등감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조언하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빌 클린턴은 인수인계를 하기 위해 부시를 만나 대화를 나눈 뒤 사석에서 평가하기를  “바보는 아닌데 아무것도 모르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중요한 결정을 하는데 별로 고민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버지 부시는 중요한 정책 결정을 할 때 회의를 통해 여러 사람의 찬반 의견을 듣고 고민하며 결정했는데 아들 부시는 그런 방식을 우유부단한 것이라고 받아들였고 그래서 부시는 직관적으로 신뢰하는 소수의 참모의 의견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넬슨 만델라는 부시를 비젼이 없는 지도자라고 흉본 적이 있는데 부시는 대통령이 되고 싶은 욕심은 있어도 미국이라는 나라를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가겠다는 생각은 없던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부시의 정책은 부통령 체이니와 정치 보좌관 칼 로브에 의해 크게 좌우되었다.


부통령 체이니는 스스로 대통령이 되겠다는 정치적 야심이 없지만 대통령의 권한을 입법부나 사법부에 비해 훨씬 더 크게 확대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닉슨 행정부에서 일하다가 닉슨의 하야를 지켜보면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체이니는 20 대에 하원 의원 보좌관부터 시작해서 백악관 비서실장 (포드 대통령),  하원의원 (6선), 공화당 원내총무, 국방장관 (아버지 부시) 등등을 거치면서 워싱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행정부와 입법부를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 법의 헛점이 무엇인지 등등에 통달한 사람이라고 한다.  정치적 경력이라고는 실권이 많이 없는 텍사스 주지사를 지낸 것 밖에 없고 (텍사스는 부지사가 실권이 많다고 한다) 게다가 실무에 별 관심도 없는 부시는 체이니가 유도하는 대로 따라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백악관에서 체이니의 비서실이 부시의 비서실보다 더 크다고 하고 언론에도 대통령 비서실장보다 부통령 비서실장 (스쿠터 리비) 가 더 많이 오르내렸다.   (리비는 체이니가 시킨 일로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부시가 감형을 해 주었다)


체이니는 국방장관으로 자신의 옛 직속 상관이던 럼스펠드를 천거하는데 (체이니는 럼스펠드의 비서관을 지낸 바 있다) 그는 체이니 이상으로 워싱턴의 생리에 대하여 잘 아는 사람이다.  럼스펠드의 경력은 거의 체이니와 똑같다.  백악관 비서실장 (포드), 국방장관 (포드), 하원의원 등을 역임했다.   닉슨은 럼스펠드를 “겁나는 개자식 (ruthless little bastard)” 라고 불렀을 정도로 독한 성질을 가진 사람이라고 한다.   (닉슨이 꼭 부정적인 의미로 그렇게 부른 것은 아니다)  그 독한 성질로 럼스펠드는 아버지 부시를 여러 번 못살게 굴었다고 한다.  아버지 부시의 출세길을 막으려하기도 하고 레이건 정권 때 아버지 부시와 부통령 자리를 놓고 경쟁하기도 했다.  저자에 의하면 아버지 부시는 정치인치고 점잖은 사람이라 남에 대하여 나쁜 말을 잘 하지 않는데 예외가 럼스펠드였다고 한다.


아들 부시가 아버지 부시가 가장 싫어했던 정적 럼스펠드를 국방장관에 기용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 부시의 친구들은 놀라면서 말렸다고 한다.  아버지 부시의 비서실장이었던 제임스 베이커는 아들 부시에게 너 럼스펠드가 네 아버지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하지 라고 까지 얘기했다고 한다.   아들 부시가 럼스펠드를 받아들인 것 자체도 아버지 부시와의 차별화의 일환이라는 시각도 있다.  아버지 부시의 정적이었던 럼스펠드는 결국 부시가의 몰락에 큰 역할을 담당한다.


 


체이니와 럼스펠드 그리고 네오콘이라고 불리던 신보수주의자들에게 부시는 아주 이상적인 대통령이었다.  그들이 유도하는 대로 순순히 따라가 주었기 때문이다.   네오콘들은 유대인 출신들이 주류를 이루는데 왕정이나 신정 아니면 군부 독재 체제이던 중동 국가들을 힘으로 미국식 민주주의 체제로 바꾸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중동 국가들이 친 이스라엘 겸 친 미 국가가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또 그들은 중동 산유국들을 군사력으로 제압하고 통제할 수 있으면 중동의 석유를 차지하고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한다는 1석 2조 (또는 3조) 의 소득을 얻을 수 있다는 꿈을 부시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꾸어오고 있었다.   평생 아버지 덕에 산다는 시각을 떨쳐버리려 했던 부시는 아버지 부시가 쿠웨이트 전쟁 승리 직후 이라크 대통령 후세인을 살려둔 것이 실수라는 시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후세인을 제거함으로써 자기가 아버지가 못한 일을 해냈다는 평가 즉 자기가 아버지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부시의 두뇌라고 불리던 칼 로브는 나름대로 미국에서 공화당의 영구 집권을 꿈꾸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보수 기독교 세력이 정치 세력화함으로써  그 꿈을 이루려 했다.   칼 로브 자신은 무신론자에 가까운 사람이지만 선거가 있을 때마다 보수적 기독교인들을 움직일 수 있는 이슈들 – 낙태, 동성연애 결혼, 줄기세포 연구 – 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주로 남부와 중서부에 많이 거주하는 보수 기독교 세력은 이에 대하여 열렬히 반응했고 이런 책략은 부시가 텍사스 주지사가 되고 미국 대통령에 두번이나 당선되는 데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부시도 스스로 다시 태어난 (born again) 기독교인 즉 아주 보수적인 기독교인인 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부시 집안은 원래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교파인 성공회 Episcopal Church 계통의 교회에 나가는 집안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들 부시는 어머니 부시와 신학 논쟁을 벌인 적도 있다고 한다.  아들 부시가 다시 태어나는 경험 (born again) 을 않으면 천당에 가지 못한다고 우기자 어머니가 반박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빌리 그래함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봤는데 돌아온 대답이 왜 당신들이 신의 결정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느냐는 것이었다고 한다 (사실 이 대답은 어떻게 기독교를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좀 무책임한 대답이다). 


 현재 미군은 이라크를 점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그다드의 그린 존이라고 불리는 요새 안에 갇혀있는 꼴이라고 한다.  역사적 아이러니는 이 상태가 미국 독립 전쟁 당시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의 군대라는 것은 산적 비슷한 오합지졸로서 대영제국의 정규군과는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워싱턴의 전략은 도망 다니면서 게릴라 식으로 영국군을 괴롭히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7년을 끌자 영국으로서는 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포기해 버린 것이다 (물론 프랑스라는 다른 요인이 있기도 했지만).  또 다른 역사적 비교 대상은 베트남 전쟁과 구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침공전이다.  소련은 아프카니스탄을 침공했다가 9년 동안 국력을 소비한 뒤 퇴각했는데 이는 소련이 망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 부시는 아들 부시를 구하기 위하여 럼스펠드를 국방장관 직에서 몰아내려고 애쓰기도 하고 옛 비서 실장 제임스 베이커에게 부탁해 이라크 스터디 그룹이라는 것을 만들어 이라크 문제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햇다.  내용은 이라크에서 철수하여 병력을 아프카니스탄으로 돌리고 이란과 시리아 등과 대화하여 외교적 해결을 강구하라는 것이었는데 아들 부시는 이를 무시해 버렸다. 대신 부시와 체이니는 오히려 중동에서의 확전을 꿈꾸고 있다고 한다.  이란을 폭격하려는 것이다.  며칠전 미국 공군 참모총장이 해임되었는데 공식적인 이유는 핵미사일 관리 소홀이었지만 혹시 이란의 공습에 반대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다. 

이라크 전의 실패로 미국은 세계 무대에서의 지도적 위치가 현저히 약화되었다.  국력의 소모는 둘째치고 그것보다도 정의와 인권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완전히 퇴색된 것이다.  따지고 보면 미국이 정말 정의와 인권의 나라였던 적이 있었던가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예전에 중국의 천안문 사태 등에 대하여 비판할 때 어색하지 않은 정도는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정당한 이유 없이 전쟁을 일으켜서 수십만명의 목숨을 빼앗은 나라, 대통령이 고문을 하도록 지시하는 나라, 악명 높은 관타나모 수용소와 이라크 감옥 (아부 가립) 등등 세계인들에게 불의의 나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부시는 자기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 대해서 별로 걱정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 하나님이 시켜서 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자기는 걱정이 되서 잠을 못 자는 경우도 없다고 기자에게 이야기 한 바 있다.   부시는 측근에게 애기하기를 클린턴이 퇴임 후에 강연료나 인세등으로 돈을 많이 벌었는데 자기는 그것 보다 더 많이 벌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부시의 이야기는 본인에게는 비극이 아니고 희극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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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r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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