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기행   버지니아 (Virginia) - 1

 

뉴욕서 4-5 일정으로 자동차 여행을 만한 곳은 북쪽으로 캐나다 퀘벡 Quebec (도깨비란 라마 때문에 인기있는), 남쪽으론 버지니아 윌리엄스버그 Williamsburg 정도 까지 일 것이다.  서쪽으로는 펜실베니아 주가 있긴 한데 특별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장소가 떠오르지 않는다 (허쉬 Hershey파크나 아미쉬 Amish마을 정도).  동쪽은 물론 대서양이고 ( 아일랜드 끝에 몬탁 Montauk 있긴 하지만).  아직 추위가 남아있는 3월에 북쪽으로 없고 남쪽으로 차를 몰았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살던 집을 거쳐 포카혼타스 (Pocahontas) 동네이자 미국 최초 영국인 정착지라는 제임스 타운이 있는 버지니아의 윌리엄스버그가 목적지였다.

 

뉴욕서 조지 워싱턴이 살던 Mount Vernon 까지는 차로 시간 정도 걸리고 (242 mile, 390km) 그곳에서 제임스 타운까지는 3시간 정도 걸린다 (150 mile, 240km). 조지 워싱턴의 집은 그가 태어난 곳은 아니고 많은 (아주 많은) 미망인과 결혼한 후에 살던 집이다. 집에서 농장주로서 16년간 살다가 독립 전쟁에 나가 (1775) 전쟁을 치르고 대통령까지 지낸 22년만에 돌아와 (1797) 여생 (2) 보냈다. 날씨가 추운데도 토요일이라 그런지 집에 들어가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있었다. 농장이니까 당연히 대지는 넓었지만 자체는 아무래도 18세기에 지어진 집이라 기대보다 작았다. 농장 입구에 세워진 visitor center 에서 기념품을 사는 사람들 표정에 초대 대통령에 대한 경외감이나 자부심 같은 것이 느껴졌다.  



사진 설명: 워싱턴 집을 구경하기 위해 줄서  모습. 오른 건물이 본관이고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은 servant room 이라고 손님들을 모시고 하인들이 쓰던 건물이라고 한다. (Galaxy Note 8 으로 찍음)




Visitor center 구석에는 농장에서 일하던 흑인 노예의 생활을 보여주는 전시관도 있었다. 자유와 해방과 행복권의 추구를 내세우며 독립전쟁을 이끌었던 워싱턴의 농장에서는 300명이 넘는 노예가 있었다. 전시관에서 안내문을 열심히 읽고 있는 흑인 모녀가 눈에 들어왔다. 워싱턴은 노예들이 쉬는 시간이 없이 일하도록 독려했다고 한다. 경제학자들은 노예제도는 경제성이 낮아서 링컨의 노예 해방이 없었 어도 없어졌을 것이라고 한다. 노동 생산성이 낮아서 먹여 살리는 유지비용이 있다는 것이다. 수백명의 노예를 데리고 농사를 지어도 워싱턴은 빚을 많이 지고 있었다. 워싱턴뿐 아니라 버지니아 농장주 대부분이 영국 상인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었고 그런 점이 버지니아가 독립 전쟁에 참여하는 것에 일조했다고 한다.

 



사진 설명: 워싱턴이 살던 (Mount Vernon).  (Galaxy Note 8 으로 찍음)



당시 대영제국과 독립군과의 싸움은 지금으로 따지면 미국과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과 비슷했다. 그런 전쟁을 승리로 이끈 워싱턴은 물론 대단한 인물이다. 그러나 운도 매우 좋았다. 워싱턴의 독립군이 영국군과 정면으로 맞붙어 이긴 적이 거의 없었다. 이긴 경우는 게릴라 기습 공격에서 치고 빠지는 식이었다. 워낙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라 영국군은 인명 피해를 최소화 해서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 목적이었고 독립군은 도망 다니며 식민지 사람들의 독립에 대한 꿈을 유지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데 미국 땅덩어리가 워낙 커서 도망 다닐 곳이 많았다. 워싱턴의 공적은 춥고 배고픈 상황에서 독립군의 해체를 막고 유지한 것이었다. 반란의 괴수로 찍힌 워싱턴은 중간에 포기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미국 독립 전쟁의 승리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영국을 견제하려는 프랑스 참전이었다.


여행 팁:

볼티모어에 가격이 좋은 게식당이 많으므로 가는 길에 들려가면 좋다.

워싱턴 DC 바로 아래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에 가격에 비해 깨끗한 호텔이 많다.


 

(계속)

Posted by krkim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