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ntral Park 2


센트럴 파크는 마차 타고 돌아다니는 방법도 있고 자전거 타고 돌아 다니는 방법도 있는데 제일 좋은 방법은 걷는 것이다. 마차는 비싸고 말똥 냄새도 나고 가는 길이 제한 되어 있다. 자전거도 도로가 제한 되어 있다 (재미있는 구석을 들여다 보는데 오히려 짐이 된다) . 그렇지만 시간이 제한된 관광객의 입장에서 센트럴파크를 걸어서 한바퀴 다 돌만큼 볼 것이 많지는 않으니 자전거를 타고 한바퀴 돌아 보는 것도 그리 나쁜 생각은 아니다. 파크 남쪽 6 ave 에 Citi Bike 빌려 주는 데가 있는데 30분 이상 타면 비싸진다고 한다. 그 주변에 자전거 빌려주겠다고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들이 즐비한데 빌릴까 하다가 그냥 가면 더 깎아 준다고 한다. 실제로 빌려 본 적은 없다. 경치 좋은 곳 몇 군데를 꼽자면 The Loeb Boathouse (너무 덥지 않을 때 여기서 보트를 빌려 타는 것도 괜찮다), Belverdere Castle (2018 5월 12일엔 공사 중이었다), Bethesda Fountain 등이 있다. 


Bethesda Fountain (아래) 은 Central park 의 중심이라고 부르는데 지도를 보면 센트럴파크 남반부의 중심에 있다. Bethesda 라는 이름은 성경에 나오는 고대 예루살렘의 로마식 목욕탕/수영장 Bethesda Pool 에서 따온 것이다. 천사가 이곳의 물을 휘저을 때 들어가는 첫번째 사람의 병이 낫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주변에 앉아 기다렸다는 곳이다. 아래 사진의 천사가 바로 그 천사를 나타낸다. 그렇다고 이 분수에서 병을 낫게 해달라고 비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대신 이 분수의 북쪽에 (센트럴파크 중간 쯤에) 뉴욕시 상수원으로 쓰이던 저수지가 있는데 그 덕에 뉴욕 시민들이 전염병에 걸리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 분수의 물은 거기서 끌어다 쓰는 것이라고 하니 전혀 연관이 없다고 하기는 어렵겠다.



아래 사진은 그 분수 바로 옆 Bethesda Terrace 이다. 사진을 찍고 있는 신부가 왼쪽에는 길거리 성악가가 노래를 하고 있다. 

파크 중간 쯤 (79 street) 에 서쪽으로는 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가 있고 동쪽으로는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가 있다. 메트로 뮤지엄은 세계 10 대 박물관을 꼽으라면 꼭 들어가는 데  (National Geographic Forbes 등 유명 잡지들에 따르면) 방문객 수로는 세계 세번째 박물관이란다 (1위는 파리의 Louvre 이고 2위는 북경의 중국 국립 박물관이라 한다. 말 나온 김에 4위는 바티칸 5위는 대영박물관). 메트로 뮤지엄은 최근까지 사실상 “공짜” 였다.  (내고 싶은 액수를 내면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2018년 3월 이후) 성인인 경우 25불씩 내야한다. 예외가 있긴하다.  뉴욕주 면허증이 있거나 뉴욕 뉴저지 커네티컷 학생증이 있으면 예전처럼 “pay-as-you-wish” 이다. 


센트럴파크는 1853년에 만들기 시작했는데 만든 이유 중 하나가 뉴욕에도 런던의 Hyde Park 같은 공원을 만들어 주변 부동산 가격을 올리려는 것이었다. 센트럴파크의 크기(3.4km2) 는 남산 (2.9km2)보다 조금 크고 서울 숲의 세배정도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 땅을 매입하기 위해 쓴 돈이 알래스카를 구입한 가격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센트럴파크를 짓기 시작한지 10년 쯤 되었을 때 미국은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알래스카를 720만불에 샀는데 (1867년) 센트럴파크 부지 가격이 740만불이었다는 것이다. 센트럴파크를 짓기 전 그 땅에는 흑인들을 포함한 빈민들이 살고 있었고 가축을 기르기도 했었다 고 한다. 센트럴파크의 남쪽은 여러가지 인공 시설 들이 많아 더 화려하고  북쪽은 나무가 많고 더 자연스럽다.

The Loeb Boathouse 에서 보트를 빌려 타다 찍은 사진. 내 컴퓨터 배경 화면이기도 하다.


Belverdere Castle. 성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작다. 전망대이다. 아래 사진은 거기서 내려다 본 풍경 둘





맨해튼 일단 끝. (추후 보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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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ral Park - 1

 

맨해튼에서 TV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이 Times Square 라면 영화에 제일 많이 나오는 곳은 Central Park 이다. 59 street 에서 110 street 사이 그리고 5th Ave 에서 8th Ave (Central Park West 라고도 불린다) 사이의 직사각형 모양으로 그대로 맨해튼의 중앙 공원이다. 남쪽부터 살펴보면 Central Park 남서쪽 모서리엔 Columbus Circle 있고 남동쪽 모서리엔 Plaza hotel 있다.  

 

컬럼버스 써클 중심엔 당연히 컬럼버스 동상이 있다. 1892 년에 컬럼버스의 미대륙 상륙 400 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탈리아 출신 미국인들이 주도하여 세운 것이다. 최근에 컬럼버스가 재평가 되면서 (원주민들에게 나쁜 짓을 많이 했다) 없애자는 여론도 있다. ( 지역 컬럼버스 동상의 부위에 빨간 페인트를 칠하기도 하도 받침대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낙서를 하는 일도 있어서 요새는 동상에 대한 경비가 심해졌다고 한다.) 유럽에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동상을 높은 위에 올려 놓았는지 의아하다. 열심히 만들어 놓고 수도 없게. 멀리서 보이라고 그런건가.

 

뉴욕서 제일 유명한 호텔인 Plaza Hotel Home Alone (2), Sleepless in Seattle, The Great Gatsby 여러 영화에 등장하기도 했다. 한때 Trump  소유한 적이 있었는데 다행히도 너무 비싸게 사서 파산하여 되팔았다. 유학생 시절이던 80 년대 후반에 플라자 호텔을 구경할 커피숍에 적이 있는데 바로 앞에Arnold Schwarzenegger 그의 부인이었던Maria Shriver 커피숍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있었다.  누구는 브라운에 가고 누구는 하바드에 가고 그런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케네디 가문 아이들 대학 입학 이야기를 하는 같았다. 조금 있다가 호텔 매니저가 나타나 두사람을 커피숍 안으로 데리고 가버렸는데 아무도 사인을 받거나 사진을 찍자 거나 하는 사람은 없어서 속으로 뉴요커들은 자존심이 강한가보다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유명해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플라자 호텔 맞은편 (센트럴 파크의 모서리) 에는 남북 전쟁 영웅인 Sherman 장군의 금빛 동상이 승리의 여신과 함께 있다. 남부군에게 무자비했던 장군으로 유명한데 파죽지세로 남부의 도시들을 점령하여 북부가 승리하는데 공을 세웠다. 2 세계대전 가장 많이 쓰였던 미제 탱크를 그의 이름을 붙여 셔먼 탱크라고 부른다. 남북 전쟁이나 셔먼 장군이나 왠지 황금빛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셔먼 동상에서 블록 떨어진 (6th Ave 에서 Central park 들어가는 입구) Jose de San Martin 장군의 기마상이 있다. 사람은 아르헨티나의 조지 워싱턴이라고 불리는 사람으로서 스페인으로 부터의 독립 전쟁을 이끈 장군이다. 미국은 아르헨티나에 조지 워싱턴 동상을 보내고 아르헨티나는 미국에 동상을 보냈다고 한다. 동상 바로 뒤엔 스페인 제국에 대항한 다른 남미의 영웅 Simon Bolivar 동상이 있다. 볼리비아는 사람의 이름 만든 국명을 만들었다고 한다. 동상들을 지나 파크 안으로 들어가다 보면 또다른 호세의 동상이 나온다. 쿠바 독립 (스페인으로 부터) 영웅 Jose Julian Marti 기마상이다. 동상들이 있는 곳은  6th Ave Central Park 만나는 지점인데 6th Ave Avenue of Americas 라고도 부르는 이유는  북미와 중남미의 연대를 기리자는 의미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중후반부터 미국과 중남미와 관계는  아주 좋다고 하기 어렵다. 중남미 사람들에게 이제 미국은 자신들을 억압하던 스페인 제국과 비슷한 이미지로 느껴지는 지도 모른다


센트럴 파크가 시작하는 남쪽 풍경을 종합해 보자면 남미에 스페인 제국의 식민지를 시작한 Columbus 동상을 서쪽에 세우고 그 스페인 제국으로부터 벗어나는데 공을 세운 사람들의 동상 셋을 동쪽에 세운 셈이다.  Central Park 남동쪽에 모서리에 동상이 하나 있는데 이것도 중남미 독립과 연관되어 있다. 19세기 쿠바독립 전쟁 당시  미국 군함이 쿠바 해안에서 폭발하여 배에 타고 있는 260 명이 사망한 것을 추모하기 위한 조형물이다. (USS Maine Monument) 수백명의 해군이 사망한 것을 추모하는 형상물이 엉뚱하게도 세마리의 말 (해군이기 때문에 해마를 상징) 을 타고 있는 여신상 같아 보인다. 이 동상은 미국을 상징하는 여성 캐릭터인 콜럼비아를 의미한다고 한다. 미국의 수도가 District of Columbia 인 것도 영화사 이름이나 대학의 컬럼비아인 이유도 여기서 유래한다. 그런데 요샌 미국을 상징하는 남자 캐릭터인 Uncle Sam 에 밀려서 사람들이 잘 모른다고 한다. 



한편 USS Maine 함정이 침몰한 원인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확실히 밝혀 지지 않았다. 스페인이 그랬다는 설 때문에 미국과 스페인의 전면전의 계기가 되었는데 사실은 화약고의 화재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전쟁의 명분을 얻기 위해 일부러 그랬다는 음모론도 있다. 어쨌든 이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필리핀과 Puerto Rico 를 차지하면서 강대국으로 인정을 받게되고 스페인은 남미 대륙에서 완전히 물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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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s Square

 

뉴욕서 가장 TV 자주 나오는 곳이 타임스퀘어이다. 서울서 보신각 타종 하듯이 해가 바뀔 마다 Ball-drop 행사를 하는 장소이고 수많은 광고 브로드웨이 극장 간판들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면서 뉴욕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이다타임스퀘어는 브로드웨이와 7th Ave 자로 만나는 지점 (45 street) 중심으로 42 street 과 47 street 사이의 8 지역 지칭한다. (삼각형 두개가 꼭지점에서 만나는 8자형이다. 나비 넥타이 모양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광장의 남쪽 끝부분에 있는 건물 (One Times Square) New York Times 신문사 사옥이었기 때문에  Times Square 라고 불린다. 근데 뉴욕타임스 신문사는 건물에서 이사를 나갔고 건물은 주로 광고판을 붙이는 사용한다. 아래층을 뻬고는 거의 비어 있다고 한다.

맥주 사진이 보이는 건물이 Ball Drop 하는 Times Square 남쪽 끝 건물 (One Times Square). 

다른 시기에 찍은 같은 건물 사진


타임스퀘어의 북부 반쪽을 Duffy Square (또는 Father Duffy Square) 라고 부르기도 한다. 카톨릭 신부였던 Duffy 는 1차 대전 때 군목으로 참전하여 공을 많이 세워서 신부로서 가장 많은 훈장을 받았다고 한다. 전쟁터에서 부상자를 구해내는 일 뿐 아니라 실제 전투에서도 공을 많이 세우고 뛰어난 리더쉽을 발휘하여 연대장으로 임명될 뻔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Duffy 신부의 동상 뒤에는 브로드웨이 쇼 티켓을 싸게 파는 TKTS 건물이 있는데 이 건물의 지붕은 계단식 관중석처럼 되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 타임스퀘어의 전경을 내려다 보는 명소가 되어있다. 

Times Square 북쪽 끝. 가운데 검은 색 동상이 Father Duffy 동상이고 그 뒤가 TKTS 빌딩 위에 앉아있는 사람들





 

내가 처음 뉴욕에 왔을 (1986) 만 해도 타임스퀘어 주변은 지저분하고 위험한 지역이었다.  포르노 극장과 포르노 잡지와 비디오를 파는 가게 그리고 핍쇼를 하는 가게들이 줄을 지어 있었다. 핍쇼란 동전을 넣으면 열리는 조그만 구멍을 통해 나체쇼를 보는 것이다. 19 세기에도 이곳은 홍등가로 유명했다고 한다. 당시에 내가 Times Square 쪽으로 구경 간다고 하자 5 짜리를 뒷주머니에 넣고 가라고 조언을 주는 사람도 있었다. 노상 강도들이 많은데 빨리 5 짜리를 건네 주면 그냥 보내준다는 것이다. 물론 좀 과장된 경고였겠지만 베트맨 영화에 나오는 어둡고  위험한 Gotham City 거리의 장면들이 바로 당시 42 주변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의 타임스퀘어는 안전하다. 밤에도 주말엔 관광객들이 가득차 있어 걸어가기 힘들 정도이다. 노상 강도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테러리스트는 모르겠지만.

 



 타임스퀘어 빌딩 (One Time Square) 보면 연상되는 건물이 다리미” (Flatiron)빌딩 이다. Flatiron  빌딩도 맨해튼을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브로드웨이와 5th Ave 23 street 에서 X 자로 만나 생긴 삼각형 공간에 치즈 케잌 조각처럼 만든 건물로서 뉴욕서 가장 사진이 많이 찍히는 건물이다. 타임스퀘어 빌딩은 그러나 완전한 삼각형은 아니고 뾰족한 모서리가 잘려 나간 사다리 꼴이다. Flatiron 빌딩도 광고판을 단적이 있는데 주변 거주자들이 반대해 철거했다고 한다.

By Imelenchon (original work) - This is a retouched picture, which means that it has been digitally altered from its original version. Modifications: cropped. The original can be viewed here: Edificio Fuller (Flatiron) en 2010 desde el Empire State.jpg. Modifications made by Beyond My Ken.,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2762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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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니치 빌리지 바로 14 street 부터 Central Park 시작하는 59 street 까지 Midtown 이라 부른다.  (34 street 북쪽부터 미드타운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지역에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는 Times Square, Rockefeller Center, Empire State Building, Chelsea, Koreatown 등이 있다. 남쪽부터 시작해서 15 서쪽 (9th Ave) Chelsea Market 원래는 과자 만드는 공장이었는데 (NABISCO) 지금은 관광지가 되었다. 특별히 있는 것은 아니고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건물에 식당, 빵집 옷가게 등이 . Highline Park (고가도로 공원)  올라가는 입구도 바로 붙어 있다. 2018 년에 구글이 첼시마켓 빌딩을 24 억달러에 샀다는데 단일 빌딩으로 뉴욕서 가장 비싸게 거래된 건물이라 한다. Empire State Building 보다 비싼 가격이라던데 별볼일 없어 보이는 건물이 그렇게 비싼 몰랐다. 재개발 하려고 그러는지.

 

Chelsea market 은 여러번 갔는데 쓸만한 사진이 없다.


Broadway 5th Ave 사이의 32 가를 Koreatown 이라고 한다. 주말에 가면 한국식 빵집 (뚜레쥬르) 앉을 자리가 없고 갈비집  같은 식당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쉽게 있다. 이상이 한국 사람이 아니다. 코리아타운이 시작된 것은 70년대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80 중반만 해도 32 가가 그렇게 인기가 있지 않았고 한국 식당에 가려면 36 가로 가곤 했던 기억이 있다. 80년대 뉴욕에선 일식 (스시) 먹는 것이 유행이었고 일제 가전 제품 (SONY) 가장 인기 있었는데 요샌 한국 전자 제품이 가장 인기가 있고 한국 음식이 유행이다. 아들도 맵다고 먹는 떡볶이를 아들 룸메이트 (백인) 너무 좋아해 배달을 시켜 먹는다고 한다. 맨해튼에선 떡볶이 배달도 되는 모양이다. 미국에 180만명의 한인이 있다는데 21만명 정도가 뉴욕-뉴저지 지역에 있다. (불법 체류자를 포함하면 많을 것이다.)

 

코리아타운 바로 (두블럭) Empire State Building 있다. 1931 년에 지어진 빌딩은 이후 40 가까이 세계 최고 빌딩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었다. 90년이 되어가는 빌딩의 102 전망대는 9.11 자리에 새로 지은 Freedom Tower 전망대보다 생각에  훨씬 낫다. Freedom Tower 전망대는 유리로 막혀 있는 데다 유리는 대부분 지문으로 얼룩져 있고 롯데 타워 처럼 발코니같은 옥외 지역도 없다.  엠파이어 빌딩 전망대는 옥외여서 답답하지 않고 사진 찍기도 훨씬 좋다. 아래 사진은 구형 모델 스마트 폰으로 찍은 것인 데도 자유의 여신상까지 보인다. 사실 Freedom Tower 전망대 내부는 롯데 타워 전망대 보다도 못하다 (물론 경치는 맨해튼이 낫다.  서울은 아파트 옥상 초록색 방수 페인트가 너무 많이 보인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바라 본 Lower Manhattan (Freedom Tower)


Freedom Tower 에서 바라본 Midtown. Empire State Bldg 이 어령픗이 보인다. 위에 사진은 Note 4 로 찍었고 이 사진은 Note 8 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리창 때문인지 ...


강건너에서 본 Empire State Bldg



Rockefeller (John D. Rockefeller Sr) 미국 역사상 최고 부자로 여겨지는 사람이다. 요새 가치로 환산하면 게이츠보다 세네배  더 부자였다는 것이다. Rockefeller Center 그의 아들 주니어” (John D. Rockefeller Jr) 지은 것이다. 록펠러 센터는 일본 경제가 아주 잘나가던 80년대에 미츠비시가 샀다가 크게 손해보고 되팔았고 지금은 록펠러 가문과 관련이 없다고 한다. 록펠러 센터는 48 street 부터 51 street 사이와 5 th Ave 6th Ave사이의 3 블록에 있는 19 건물 콤플렉스를 가리키는데 여기서 가장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곳은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프로메테우스의 황금빛 조각상과 앞에 겨울이면 열리는 스케이트장 그리고 뒤에 (NBC 방송국 본부가 있는 30 Rockefeller Plaza 앞에) 세워지는 크리스마스 트리이다. 그곳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처음 세운 사람들은 록펠러 센터를 짓는 공사장 인부들이었다고 한다. 누가 시켜서 세운 것이 아니라 대공황 시기에 일자리를 갖게 것이 좋고 고마워 자발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나눠주는 월급 봉투를 받으면서 깡통이나 종이 등으로 트리 장식을 했다고 한다.

 

 

오른쪽에 보이는 여자 동상은 뒤에 보이는 황금빛 프로메테우스가 진흙으로 빚어 만든 최초의 인간이다. (사진에는 안 보이지만 왼쪽에 남자 동상도 있다) 록펠러 센터의 동상들이 반 기독교적 인본주의 (다빈치코드 식) 를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음식 맛은 별로이지만 스케이트 장이 보이는 식당.

여름엔 스케이트 장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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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rkim


맨해튼은 대체로 거리가 바둑판 모양이지만 스트리트나 차이나타운등을 포함한 남쪽은 구시가지였기 때문에 복잡하다. 바둑판 거리를 계획하기 시작한 것은 맨해튼 정착이 시작한지 180년쯤 지난 1811 년이었다고 한다. 바둑판 거리는 리틀 이탤리에서 5분도 걸리는 Houston street 북쪽부터 시작한다. `거기서부터 북쪽으로 1st Street 부터 거의 맨하탄 북단 (193 street) 까지 올라가고 (원래 계획에는 155 street 까지만 계획 했다고 한다) 동쪽부터 서쪽으로는 1st Avenue 부터 11th Avenue 까지 간다. 그런데 1 가와 14 사이의 서쪽 부분은 예외이다. 당시에 지역이 뉴욕시의 일부가 아닌 시골 마을이라 개발에서 제외 되었다고 한다. 지역이 Greenwich Village 이다.

 

Greenwich 라는 말은 네덜란드 말로 마을 green district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린위치 빌리지 하면 떠오르는 말들은 가난한 예술가, 동성연애, 보헤미안 (전통적 문화에 반발하는 자유로운 영혼을 의미 하는), 워싱턴 광장 등이 있다. 헨리의 단편 소설 '마지막 잎새' 라는 소설에 가난한 화가가 페렴으로 죽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배경이 그리니치 빌리지이다. 지금은 물론 땅값이 올라서 (Gentrification) 가난한 예술가들이 살기는 어렵다. 동네는 동성 연애자들의 인권운동이 시작된 곳이다. 1968년에 Stonewall Inn이라는 술집에서  단속 나온 경찰들과  동성연애자들 사이에 충돌이 있었고 사건이 동성연애자 인권 운동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당시엔 동성 연애자들이 술집에서 같이 춤추고 교제하는 것이 불법이었다.

 


빌리지에서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워싱턴 광장이다. 날씨 좋은 주말엔 워싱턴 광장은 놀이 공원 같은 분위기 이지만 한때 (18 세기 ) 공동 묘지였고 전에는 흑인들의 농지였다. 맨해튼 남부에 몰려 살던 유럽 정착자들이 북쪽 원주민 (인디언) 들의 침략을 막을 노예 출신 흑인들에게 땅을 주어 경작하게 것이다. 광장의 상징인 Washing Square Arch 조지 워싱턴 대통령 취임 100 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파리의 개선문을 만든 것인데 크기는 반도 안된다. 우리나라의 독립문도 비슷한 시기에 개선문을 만들었는 Washing Square Arch 보다 10m 정도 작다. (독립문 1894, 14.2m; 워싱턴 광장 아치 1892, 23m; 파리의 개선문 1806, 50m). 워싱턴 광장은 공공 시설이지만 NYU 건물들에 둘러 쌓여 있어 캠퍼스의 역활도 한다. NYU 는 원래 중하층 학생들을 위해 만든 학교이다. 당시 아이비 리그 대학 등에 주로 상류층/특권층 학생들이 다녔기 때문에 교육 민주화 명분으로 만든 학교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서 가장 비싼 학교 중 하나가 되었다. 

 


빌리지 바로 남쪽엔 소호 (Houston Street 남쪽이라는 뜻이다) 있는데 이곳도 예술가가 몰려 살던 곳이다. 이곳은80 중반까지도 화실이 많이 있었다. NYU 에서 대학원 다닐  같은 과 친구들과 소호를 지나가다가 백남준씨를 만나 사인을 받은 적도 있다. 더러워진 흰색 와이셔츠를 반쯤 혁대 밖으로 내놓고 걸어가던 사람에게 사인을 받자 같은 친구들이 거지에게 사인을 받느냐고 의아해 했었다. 이곳도 이젠 화실 대신 유명 브랜드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빌리지처럼 가볼만한 예쁜 카페나 오래된 빵집, 레스토랑들도 많이 있다.

 

 


Posted by krkim


네덜란드인들은 맨해튼을 원주민들로부터 24 주고  샀다는데 그로부터 50 후에 1664 영국인들은 힘으로 뺏았었다. (맨해튼을 24 주고 샀다는 이야기엔 여러가지 이견이 있긴 하다. 판게 아니라 빌려준 것이라든지 현재 가격으로 환산하면 24불보다 훨씬 많은 액수라든지 하는 애기들이다.)  그렇다고 네덜란드 인들과 영국인들이 피를 흘리며 싸운 것도 아니고 뉴욕의 네덜란드 인들은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네덜란드 후손 뉴욕커 들은 초기 정착자의 이점과 기득권으로 대접을 받고 살았다.

 

맨해튼에서 역사적으로 제일 흥미로운 건물이 Federal Hall 것이다. 뉴욕 증권 거래소 (New York Stock Exchange) 바로 옆에 위치한 건물에 봤더니 커다란 현수막에 첫번째 수도, 첫번째 대통령, 첫번째 의회라고 쓰여 있다. 이곳이 미국의 첫번쨰 국회 의사당이었고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 취임식을 가졌던 곳이라는 뜻이다. 현재 있는 건물은 사실 19세기 중반에 재건축된 건물이니 실제로 초대 대통령이 취임식을 가졌던 곳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신전처럼 지은 이유는 그리스 시대의 민주주의와 로마시대의 공화정을 지향하는 의미라고 한다. 백악관이나 제퍼슨 기념관 수도 워싱턴 디씨의 건물들도 로마시대 양식으로 지은 것을 보면 미국 사람들에게 고대 로마 제국은 모델 국가였던 모양이다. 하긴 따지고 보면 모든 서양국가에게 망한 1500년이나 되는 로마 제국은 되고 싶은 나라였는지 모른다



Federal Hall 바로 길에 나무 기둥이 박혔던 흔적들이 줄지어 남아있다. Wall Street 이름이 유래한 나무로 만든 방어벽 (palisades) 흔적인 것이다. Federal Hall 벽이 있었던 자리의 바깥쪽 (북쪽) 있고 뉴욕 증권거래소는 안쪽 (남쪽) 있다



비둘기 바로 아래 사각형이 월스트리트 방어벽의 기둥이 박혀있던 흔적이다. 그 흔적이 멀리 보이는 Trinity Church 쪽으로 계속 이어진다. Trinity Church 는 영국 성굥회 교단 교회로서 독립 전쟁 전에는 상류 사회 사람들 (반 독립파. 일제 시대 친일파같은?) 이 주로 다니던 교회였다.  




월스트릿에서 북쪽으로 20 가량 걸어가면 Canal Street 중심으로 차이나 타운이 나온다. Canal street 도시의 폐수가 고여 있던 연못의 물을 빼내기 위해 만들어진 수로 (canal) 있었던 자리를 복개하여 만들어진 거리이다. 당시에 악취 등의 문제로 저소득층이 살던 지역이고 차별 받던 중국 이민자들이 19 세기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당시 중국 이민자들은 여러가지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당시 미국은 노동력 충원을 위해 중국 사람들의 이민을 받아들였는데 중국인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여자들은 받아들이지 않아서 여성 비율이 100 명당 1명도 안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시민권을 가진 미국 여성이 중국 남자와 결혼하면 미국 시민권을 박탈하기도 했다. 가끔 아이리쉬 여자들과 결혼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아일랜드 이민자들도 당시엔 흑인들과 동급으로 차별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지금 차이나 타운은 관광 명소가 되었고 새로운 중국 이민자들이 자리 잡기엔 너무 비싸 졌다. 차이나 타운 바로 (북쪽) Little Italy 있다. 19세기엔 이탤리언들도 차별받는 이민자 그룹이었고 가난한 동네에 자기들끼리 몰려 살았다. 남부 이태리 출신 사람들은 백인의 범주에 넣어 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한때 마피아의 근거지이기도 했고 대부 같은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Little Italy 라는 커다란 간판을 빼고 별로 볼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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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 기행 – 뉴욕시 -1


뉴욕시 문장



제임스타운에 영국인들이 정착한지 2년 뒤인 1609 년에 네덜란드에서 보낸 헨리 허드슨이 뉴욕에 도착했다. 그는 아시아로 갈 수 있는 뱃길을 찾아 보려고 맨하튼 섬 서쪽에 있는 강을 따라 올라가 봤지만 인도나 중국으로 가는 길은 물론 발견하지 못했다. 대신 강에 비버가 아주 많이 산다는 것을 발견했다. 후에 헨리 허드슨은 선원들이 반란을 일으켜 목숨을 잃었지만 이름을 남겼다. 맨하튼과 뉴저지 사이를 흐르는 강을 허드슨 강이라 부르는 것이다. 허드슨이 발견한 비버의 털가죽은 유럽에서 모자와 코트의 재료로 아주 인기가 많았고 네덜란드 사람들이 맨하탄에 정착하게 되는 주요 경제적 동기가 되었다. 비버는 뉴욕시를 상징하는 문장에 들어있고 뉴욕 주를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뉴욕시 문장에는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풍차와 엣날 네덜란드 사람들이 즐겨입던 Knickerbocker 바지도 보인다. 뉴욕 농구팀 이름 (Knicks) 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헨리 허드슨이 다녀간지 15년쯤 (1624) 네덜란드 인들이 맨해튼 남단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뉴욕의 원래 이름은 암스텔담이다.  제임스타운에서도 그러했듯이 정착 초기에 방어를 위해 요새를 지었다. 맨해튼 남단에 Battery park 있는데 요새를 방어하던 대포들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그러니 배터리 파크는 뉴욕시가 시작된 곳이라 있다. 네덜란드인 들이 사는 지역이 커지면서 맨해튼 남단을 가로 지르는 담을 쌓아 원주민과 영국인들의 공격에 대비했는데 자리에 생긴 이름이 Wall street 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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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최초 식민지 제임스타운과 미국 독립전쟁의 최후의 결전지 요크타운보다 사실상 관광지로 유명한 곳은 사이에 위치한 윌리암스버그이다. 지역을 합쳐 역사적 삼각지대 (Historic triangle) 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국인들의 세력이 커가고 인디언들이 후퇴하면서 영국 정착민들은 제임스타운에서 조금 내륙 쪽으로 들어간 윌리엄스버그로 본거지를 옮긴다. 제임스타운의 이름은 당시 영국왕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정착민들이 윌리엄스버그로 옮길 당시 영국 왕의 이름을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 18 세기 미국을 재현한 민속촌” Colonial Williamsburg 있다. (Jamestown 작은 규모의 민속촌 17세기를 정착민과 인디언 마을을 재현한 곳이다.) 한국에서는 식민지라는 말이 부정적이고 치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미국에서 그렇지 않다. 자기들이 점령자였고 모국과 싸워 독립에 성공했으니  피해의식이 없어서 그런 모양이다월리엄스버그는 이런 역사적 자원을 바탕으로 관광 산업이 수입원이다.  한때 버지니아 식민지의 수도였지만 독립전쟁 영국군의 공격에 대비해 내륙 (Richmond) 으로 수도를 옮긴 뒤에 도시가 쇠퇴하고 개발이 안되었다. 그런데 오히려 덕분에 옛날 건물들이 남아 있어서 건물들을 바탕으로 민속촌” Colonial Williamsburg 만들고 이젠 버지니아 최대 관광지가 되었다. 물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놀이 공원 (Busch Gardens) 있다. 부시가든은 미국서 제일 많이 팔리는 버드와이저 맥주를 만드는 세계 최대의 맥주회사인 Anheuser-Busch 만든 놀이 공원이다. 놀이 공원 화장실 벽에는 우유보다 맥주가 훨씬 건강에 좋다고 주장하는 문구가 쓰여진 것을 본 적이 있다.

 

Colonial Williamsburg 나는 인연이 없는 모양이다. 오래 여름에 왔을 때는 숨쉬기도 어려울 정도로 너무 더워서 대충 보다 나왔는데 이번에는 춥고 비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포기하고 요크타운 (Yorktown) 으로 차를 몰았다. 요크 타운에는 조그만 박물관과 격전지를 드라이브 하는 코스가 있다. 사실 특별히 것은 없지만 비바람이 몰아쳐도 차안에서 앉아 돌아 있으니 고마웠다. 당시 영국군은 뉴욕과 버지니아 양쪽에 나뉘어 주둔하고 있었고 뉴욕에 주둔하고 있었던 워싱턴은 맨하튼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군의 본진을 공격하고 싶어 했었다. 그런데 남쪽 (서인도 제도) 있는 프랑스 함대가 버지니아 공격을 도울 있다고 하니 군대를 이끌고 뉴욕서 버지니아로 행군한다. 미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행군한 길이 내가 길과 비슷하다. 워싱턴이 주둔하고 있던 Dobbs Ferry 영국군이 주둔하고 있던 맨하튼에서 북쪽으로 30 거리이고 내가 사는 동네의 동네이다. 그곳을 출발해 프린스턴 필라델피아 볼티모어 등을 거쳐 내려 왔다. 따지고 보면 워싱턴이나 나나 따라 최단거리로 내려 왔을 테니 같은 길을 따라 내려온 것이 신기할 것도 없다. 워싱턴도 내려오다 자기 집을 들렸다 왔고 나도 같은 집을 구경하고 내려왔다 ( 신기해 보이려고 그런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 함대는 요크타운 바다에서 영국 함대를 물리쳐 퇴로와 보급로를 막고 미국 프랑스 연합군은 요크타운에 주둔해 있던 영국군을 공격해 항복을 받아낸다. 버지니아에서 대패한 영국은 미국을 포기하고 미국 독립전쟁은 끝이 난다. 프랑스 군은 병력만 지원한 것이 아니라 독립군의 월급까지 빌려 주었다고 한다. 남쪽으로 행군하던 독립군이 중간 (메릴랜드 ) 오다가 월급 주면 간다고 버텨서 프랑스 사령관이 워싱턴에게 돈을 꿔주었다는 것이다. 프랑스 장군은 빌려준 돈을 받았을까? 미국 독립 전쟁을 돕느라 돈을 너무 많이 쓴 프랑스 왕은 세금을 더 걷어 구멍난 재정을 메꾸려다 프랑스 대혁명을 만나 단두대로 향하게 된다.

 

영국군과 항복 조건을 상의했다는 요크 타운 농가. 


그 집 내부. 항복 문서를 사인했다는 방




여행

뉴욕으로 돌아올 건너 Chesapeake Bay Bridge-Tunnel 나름 관광자원이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 True Lies 등에도 등장했던 다리인데 30 넘게 파도를 내려다 보면서 바다위를 달리는 기분이 묘하다.


미국 역사 기행 버지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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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기행   버지니아 (Virginia) - 2


워싱턴의 독립군과 프랑스 연합군이 영국군과의 최후의 일전에서 승리를 거두어 미국 독립 전쟁이 끝난 곳이 버지니아의 요크타운 (Yorktown) 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미국 최초 영국인 정착지인 제임스타운 (Jamestown) 바로 동네이다. 그곳을 향해 조지 워싱턴의 농장을 출발해 95 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달렸다. 95 고속도로는 미국 동쪽 대서양 연안을 따라 북쪽 (Maine ) 부터 남쪽 (Florida) 까지 종단하는 고속도로이다.  뉴욕 , 필라델피아, 보스톤, 워싱턴 DC 동부 최대 도시들을 가로 지르는 도로로서 미국서 가장 차가 많이 다니는 고속도로라고 한다 ( 교통부 Vehicle miles traveled 기준).  미국서 자동차 여행할 때 아쉬운 것은 햄버거와 핫도그 밖에 없는 고속도로 휴게소이다. 어둑어둑해 도착해서 hotels.com 에서 Guest Rating 기준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 시즌이 아니어서 가격이 좋았다.

 

늦게 일어나 아침 먹고 역사적인 제임스타운부터 찾았다. 제임스타운 관광지는 군데로 나뉘어져 있어 헷갈리게 되어있다. Jamestown Settlement 말하자면 민속촌으로 당시 건물들이나 사는 모습을 재현해 놓은 곳이고 Historic Jamestowne 이라는 곳은 실제 최초 정착지이다. 5 거리에 있는데 운영 주체가 달라 입장료를 각각 내야 한다. “진짜제임스타운부터 갔다. 최초 정착지를 제임스 강가의 늪지대 섬에 잡은 이유는 원주민 (인디언) 공격을 막기 위해서 였는데 그곳 지리를 아는 인디언들을 상대로 늪지대는 방어막으로서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습도가 높고 모기도 많고 식수를 구하기도 어려워 초기 정착민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인디언들이 땅을 비워 놓은 이유도 사람이 살기 어려운 땅이었기 때문이다.





제임스타운 최초 정착지. 왼쪽 울타리는 틈이 많아 인디언 화살이 쉽게 통과할 것 같아 보였다. 그래도 대충 만든 것이 아니라 원래 나무 기둥이 박혔던 자국을 따라 재건한 것이라고 한다. 앞에 보이는 제임스 강에서 하선 했을 것이다. 그 지역을 통치하던 포카혼타스의 아버지는 앞에 보이는 대포를 얻기 위해 애를 많이 썼다고 한다. 

 

 

아마추어 고고학자인 듯한 현지 가이드에 의하면 제임스 타운이 최초 영국인 정착지인데도 그보다 13년이나 늦은 매사추세츠 주의 보스턴 남쪽지역 (Plymoputh) 그늘에 가려진 것은 버지니아가 남북 전쟁 남부군의 일원으로서 패배한 주이고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지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또 다른 이유는 매사추세츠 정착민들은 종교의 자유를 위해 것인데 비해 버지니아 정착민들은 영국 투자자들이 벌기 (금을 얻기) 위해 보낸 것이라 미국의 시작으로 모양이 좋지않아서 였다. 사실 제임스타운은 미국의 시작으로 내세우기엔 좀 끔찍한 역사 (식인의 역사) 를 품고 있다. 인디언에 포위되어 굶기 시작한 영국인들은 말, 개, 고양이, 잡아 먹고 나중엔 가죽 구두도 삶아 먹다가 결국 서로 잡아먹기 시작했다. 임신한 부인을 살해해 소금에 절여 놓고 먹다가 들켜서 사형된 남편의 기록도 있고 후에 발견된 소녀의 유골에서도 살을 발라낸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유럽인들의 식민 역사상 식인의 증거가 발견된 곳은 제임스타운이 유일하다. 


금이 발견되지 않은 제임스타운이 경제성을 가지게 되고 따라서 유지 되었던 것은 담배 농사때문이었다. 인디언 공주 포카혼타스와 결혼한 영국인이 바로 제임스타운에 담배를 재배해 영국에 팔기 시작한 사람이다. 제임스타운 식민지 광고를 위해 ( 많은 이주자를 모집하기 위해) 영국에 보내진 포카혼타스는 공기 나쁜 런던에서 1년만에 병에 걸려 죽는다.


 

영국인 정착민들에게 납치당해 기독교로 개종하고 영국인과 결혼하여 

일시적이나마 평화의 시기를 열었던 포카혼타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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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기행   버지니아 (Virginia) - 1

 

뉴욕서 4-5 일정으로 자동차 여행을 만한 곳은 북쪽으로 캐나다 퀘벡 Quebec (도깨비란 라마 때문에 인기있는), 남쪽으론 버지니아 윌리엄스버그 Williamsburg 정도 까지 일 것이다.  서쪽으로는 펜실베니아 주가 있긴 한데 특별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장소가 떠오르지 않는다 (허쉬 Hershey파크나 아미쉬 Amish마을 정도).  동쪽은 물론 대서양이고 ( 아일랜드 끝에 몬탁 Montauk 있긴 하지만).  아직 추위가 남아있는 3월에 북쪽으로 없고 남쪽으로 차를 몰았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살던 집을 거쳐 포카혼타스 (Pocahontas) 동네이자 미국 최초 영국인 정착지라는 제임스 타운이 있는 버지니아의 윌리엄스버그가 목적지였다.

 

뉴욕서 조지 워싱턴이 살던 Mount Vernon 까지는 차로 시간 정도 걸리고 (242 mile, 390km) 그곳에서 제임스 타운까지는 3시간 정도 걸린다 (150 mile, 240km). 조지 워싱턴의 집은 그가 태어난 곳은 아니고 많은 (아주 많은) 미망인과 결혼한 후에 살던 집이다. 집에서 농장주로서 16년간 살다가 독립 전쟁에 나가 (1775) 전쟁을 치르고 대통령까지 지낸 22년만에 돌아와 (1797) 여생 (2) 보냈다. 날씨가 추운데도 토요일이라 그런지 집에 들어가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있었다. 농장이니까 당연히 대지는 넓었지만 자체는 아무래도 18세기에 지어진 집이라 기대보다 작았다. 농장 입구에 세워진 visitor center 에서 기념품을 사는 사람들 표정에 초대 대통령에 대한 경외감이나 자부심 같은 것이 느껴졌다.  



사진 설명: 워싱턴 집을 구경하기 위해 줄서  모습. 오른 건물이 본관이고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은 servant room 이라고 손님들을 모시고 하인들이 쓰던 건물이라고 한다. (Galaxy Note 8 으로 찍음)




Visitor center 구석에는 농장에서 일하던 흑인 노예의 생활을 보여주는 전시관도 있었다. 자유와 해방과 행복권의 추구를 내세우며 독립전쟁을 이끌었던 워싱턴의 농장에서는 300명이 넘는 노예가 있었다. 전시관에서 안내문을 열심히 읽고 있는 흑인 모녀가 눈에 들어왔다. 워싱턴은 노예들이 쉬는 시간이 없이 일하도록 독려했다고 한다. 경제학자들은 노예제도는 경제성이 낮아서 링컨의 노예 해방이 없었 어도 없어졌을 것이라고 한다. 노동 생산성이 낮아서 먹여 살리는 유지비용이 있다는 것이다. 수백명의 노예를 데리고 농사를 지어도 워싱턴은 빚을 많이 지고 있었다. 워싱턴뿐 아니라 버지니아 농장주 대부분이 영국 상인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었고 그런 점이 버지니아가 독립 전쟁에 참여하는 것에 일조했다고 한다.

 



사진 설명: 워싱턴이 살던 (Mount Vernon).  (Galaxy Note 8 으로 찍음)



당시 대영제국과 독립군과의 싸움은 지금으로 따지면 미국과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과 비슷했다. 그런 전쟁을 승리로 이끈 워싱턴은 물론 대단한 인물이다. 그러나 운도 매우 좋았다. 워싱턴의 독립군이 영국군과 정면으로 맞붙어 이긴 적이 거의 없었다. 이긴 경우는 게릴라 기습 공격에서 치고 빠지는 식이었다. 워낙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라 영국군은 인명 피해를 최소화 해서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 목적이었고 독립군은 도망 다니며 식민지 사람들의 독립에 대한 꿈을 유지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데 미국 땅덩어리가 워낙 커서 도망 다닐 곳이 많았다. 워싱턴의 공적은 춥고 배고픈 상황에서 독립군의 해체를 막고 유지한 것이었다. 반란의 괴수로 찍힌 워싱턴은 중간에 포기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미국 독립 전쟁의 승리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영국을 견제하려는 프랑스 참전이었다.


여행 팁:

볼티모어에 가격이 좋은 게식당이 많으므로 가는 길에 들려가면 좋다.

워싱턴 DC 바로 아래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에 가격에 비해 깨끗한 호텔이 많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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